<9년 전의 기도>

9년 전의 기도
오노 마사쓰구 지음, 양억관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5월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슬픔의 방울 같은 것을 지니고 사는 것 같다.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소설 속의 한 구절이 바늘이 되어 건드리면 그 방울은 팡팡 터지며 왈칵 눈물이 되기도 하고, 혹은 가슴이 뻐근해지기도 한다. 이 책은 뾰족하게 찌르는 바늘이 아니라 뭉툭하게 방울들을 살며시 쥐었다 놓는 정도의 느낌이었달까? 가슴 뭉클한 감동이라기보다 그저 마음 따뜻해지는, 가벼운 감상이 스치듯 지나가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표제작인 '9년 전의 기도'를 포함해 모두 네 편의 소설이 손에 손을 잡고 있는 연작소설집이다. 일본의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던, 살고있는 사람들이 서로 무심히 자신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깊이 얽혀있다. 자신도 의도하거나 모르는 채로 때론 의지가 되어주고, 때론 상처가 되기도 하며 오랜 세월을 함께 가로질러온 이들의 이야기이다.

9년 전의 기도 속에서 사나에는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는 아들을 낳지만, 아빠인 캐나다인이 어느날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 어린 아들 속에는 갑자기 폭발하는 통제할 수 없는 자아가 깃들어 있다.  결국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나에, 그녀는 문득 밋짱을 떠올린다. 9년전 함께 캐나다 여행을 떠났을 때,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던 밋짱의 모습. 그 모습은 9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녀의 힘겨움과 슬픔에 위로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떠나버린 남편과 고통과 기쁨을 함께 주는 자폐를 겪고있는 아들, 현실적인 생활의 불편함 등등.. 밋짱의 문병선물인 행운의 조개껍데기를 줍기위해 아들과 섬에 온 사나에는 어느 순간 아들의 손을 놓아버리는 상상을 한다. 그 자유로움을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 속, 여전히 그 아름다운 아이는 그녀 곁에 있고, 그녀는 더이상 슬픔만을 생각하지 않으리란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꼭 잡는다.

뒤 쪽 다른 소설 속에서 밋짱과 그 아들의 이야기는 조금더 구체화된다.

각각의 소설이 등장인물을 공유하면서, 서로 다른 주인공이 나서서 다른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작소설은 도특한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타인을 보고, 타인은 다시 '나'가 되고 나는 타인이 되는, 비밀아닌 삶의 비밀을 펼쳐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느슨하게나마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외롭다고 느끼다가도 다시 힘을 내고 보이지않는 응원을 받으며 씩씩하게 삶을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