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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의 살인광선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가린의 살인광선'이라는 제목만큼이나 낯선 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는 우리가 잘 알고있는 레프 톨스토이와 같은 가문 출신의 작가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활약하다가 이후 작품활동에 몰두했다고 한다. 특히 SF물인 이 작품은 찰스 타운스가 레이저를 발명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해서 관심이 갔다. 쓰여질 당시로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고, 과학적인 설명으로는 가능할것 같지만 기술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모여 쓰여지는 SF소설 속의 상상력과 발상들이 후에 이루어지는 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과거 속의 SF를 읽으며 오늘날과 견주어보는 일은 흥미로운 것 같다. 그래서 즐겨 읽지는 않아도 가끔 "나는 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레이저를 발명하게 되었다."와 같은 한문장만으로 책장을 펼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뭔가 오래전 소년잡지에서 본듯한 삽화와 '황금의 섬으로', '독재자 가린의 파멸' 같은 차례 문구에서 옛 추억 속의 탐험소설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야심만만한 러시아의 엔지니어 가린은 살인광선을 발명하여 세계정복을 꿈꾸고, 미국의 화학재벌 롤링은 이 살인광선을 이용해 유럽경제까지도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파국을 막으려는,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에 해당할 러시안 연방수사국 소속 수사관 셸가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셸가에게서 미국식 영웅의 분위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가공할 위력을 지닌 이 살인광선의 설계도면과 비밀무기를 놓고 셋은 엎치락뒤치락. 마치 초창기의 007 시리즈를 보는 느낌으로 읽게되는데, 시종일관 드러나는 소설의 주제(?) 같은걸 보자면 돈에 대한 숭배, 사람들 사이의 끊임없는 계산과 불신,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턱대고 들이대는 광고들, 천재성과 도덕성의 문제 등등. 바로 지금도 여전히 문제시 되고 있는 것들이다.
재미있었던 점은 이 소설속의 주된 대결은 러시아와 적국이 아닌, 러시아인과 러시아인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세계 정복의 야욕을 꺽는 힘은 '혁명'이란 점이다. 과학에 대한 맹신, 과학의 힘에 대한 맹신을 보여주면서 과학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해결로서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SF 소설에는 거의 문외한이기도 하고, 읽어본 소설도 거의 없긴 하지만) 비슷한 구성의 소설이나 영화를 흔히 접할 수 있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작품성이 좋다거나 멋진 문장이 쓰여있다거나.. 등등 소설 자체로서 훌륭한 책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어린시절, 모험 소설이나 추리 소설 같은 에 푹 빠져지냈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했던 책이었다. 특히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 궁서체의 제목과 함께 그려져 있는 삽화들이 정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