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쪽
마르셀 서루 지음, 조영학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후기 / 사월의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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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이야기에는 늘 예감이 포합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의 공기와 맞닿으면서 구체적인 성찰이 되며, 이것이 다시 새로운 예감을 낳는다. 이것은 분명 이야기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순환이다."


이 책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후기 중 일부이다. 그는 이 소설을 직접 번역해 처음 일본에 소개하였다고 한다. 애정하는 하루키씨가 애정한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읽게된 책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규정해보자면 '근미래 디스토피아 소설'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미래라면 얼마나 가깝다는걸까? 적어도 위에서 하루키가 언급했듯이 '현실의 공기와 맞닿'아 있다고 할만큼은 가깝다고 느껴졌다. 디스토피아의 고전이라 할만한 작품들이 늘 그렇듯 이 책 역시 바로 현재의 여러 국면들, 현재 인류의 면모들을 펼쳐 보여준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을까? 여러 소문들은 있지만, 살아남은 한 명 한명이 겪은 구체적인 사건들은 있지만, 결국 그 파멸의 시작점은 어느 누구도 정확히 알 지 못한다. 그리고 지구의 먼 북쪽에 띄엄띄엄 살아남은 이들과 혹독한 생존의 몸부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생존자 한 명의 이야기로부터 소설은 점차 확대되어간다. 그리고 그 전개의 사이사이에는 크고 작은 반전들이 끊임없이 끼어든다. 치열한 생존의 장이란게 그리 평탄할리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우리는 운이 좋을 때는 운이 좋은지 모르고 산다. 난폭하지 않은 사람들과 살고, 일하는 대가를 받고, 지붕 슬레이트나 수리하고, 왜 빵이 부풀지 않는지 걱정할 때가 운이 좋을 때다." 하지만 이미 그런 따뜻했던 시절은 끝장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도 있다. 자동피아노와 책을 아직은 땔감으로 쓰지 않았다. "이 시대에 더 이상 설 자리없는 무용지물들, 하지만 내가 쓰레기나 먹고, 주저 없이 살인을 하고, 춤을 추거나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갈망까지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문명 따위와 얽히지 않고 북쪽을 터전으로 살아온 퉁구스 부족들이 있다. 그들은 어쨋든 아직은 살아남아있다. "단순한 생활방식일수록 수명이 길다. 복잡한 기계가 먼저 깊옆으로 나가떨어진다."


사실 나의 가족은 일찌기 문명을 등지고, 신앙에 기대어 황량한 북쪽으로 이주해왔다. 결핍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나름의 평화와 예절을 유지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끊임없이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누며 공존하기에는 모든게 터무니없이 부족해졌고, 결국 갈등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적어도 이 마을에는 '나' 혼자 살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아니라 해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온전히 저버릴 수가 없"는 나. 하지만 "결국 선함이란 시대가 허락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날 나는 비행기가 날아와 추락하는 장면을 보게된다. 그리고 어딘가 아직 '문명과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에 기대에 비행기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무작정 길을 떠난다. 그리고 문명의 찌꺼기와 사람들의 무리를 마주치게 되지만...


이렇게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이 최선이겠다는 생각도 했다. 200년 후면 이 땅은 비가 깨끗이 씻어버리고 인간의 잔재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서 지구의 역사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층이 되어 로마는 물론 피라미드를 지은 조상들 위에 덮이리라." 


문명은 사라져가고 있다. 나는 또한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종족이야말로 우리 이전의 어느 존재들보다 더 아름다운 모양들을 만들었다. 솔직히 신의 솜씨도 조잡할 때가 있다. (중략) 과연 우리가 긋기 전에 지상에 직선이라는 피조물이 존재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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