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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평점 :
내게는 낯선, 아직은 젊은(79년생) 작가 최정화의 단편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을 읽었다.
표제는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에서 앞부분만 따온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소설 속 중심인물들을 한데 묶는 키워드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린 누구나 단단한 자기 껍질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단단한 관계의 틀 안에 자리잡고 있어서
좀처럼 운신의 폭을 넓히고, 변신을 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단단한 것에도 균열은 있기 마련.
그 틈새는 예기치 않은 순간, 사소한 몸놀림으로 벌어지기 시작해
때로는 삶을 뒤집어 놓거나, 주변 누군가를 빠뜨려버리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바로 그런 실금같은 균열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의 모든 단편이 그러하듯 소설들은
뭔가 행복의, 혹은 불행의 예감을 남기며 이야기가 툭 끊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happy엔딩인지, sad엔딩인지를 말하기 애매하다.
아주 많~이 애매하다.
지극히 내성적이지만, 뭔가가 송두리째 뒤집어질듯도 하고
지극히 비극적 인물 옆에는 새로운 시작에 살그머니 미소짓는 누군가가 있기도 하다.
성공적인 실패의 무수한 반복 속에서 흐려져가는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오가닉 코튼 베이브'와
철학책 한 권에서 존재의미에 눈떴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하나의 허위에서 또다른 허위로 옮겨가는 이야기인
'파란 책'은 특히 기억해두고 싶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