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마침내 문명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는 순간을 소설로 쓴다면 바로 이런 소설이 될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헤아리기 힘들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일테지만, 한 가족과 한 시대로 압축해 '소설'이라는 도구로 정리해본다면 말이다. 그렇게 인류 진화의 결정적 '과정'은 이 소설 속에서 거의 '순간'이 된다.
여기까지 적고보니 뭔가 심오한 소설같지만, 이 책의 띠지에 쓰여있는 "지난 50만 년 동안 나온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라는 문구처럼 이 소설은 매우 재미있는, 말하자면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아마도 원제인 'The evolution man'의 그 사람은 에드워드일 것이다. 원시시대 초유의 과학자, 빨리 진화하고 싶어 안달이 나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하는 그. 그는 마침내 불을 다루게 되고, 가족 내 결혼을 금지시킴으로써 가족단위에서 부족단위로의 성장에 기여하기도 하고, 그 아들들을 통해 원시예술이나 동물 길들이기의 시작을 지원하기도 한다. 맹수가 만물의 영장이었던 시대를 살았던 인간들이 마침내 나무에서 내려올 용기를 내었다는 것 만으로도 놀라운 도전이었을 것 같다.
이러한 도전들이 늘 성공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을 마다하며 과거의 삶을 고집하는, 그의 형으로 대표되는, 이들도 있다. 다시 나무로 돌아가 유인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형은 에드워드의 태도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앞서 말했듯 재미있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시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아니다. 이처럼 진보를 지향하는 이들과 보수를 지향하는 이들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각기 다른 재능과 성격을 가진 이들이 모임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이 진행되고, 새로운 과학기술들(불을 다루는 능력 혹은 새로운 형태의 사냥무기 개발과 같은)이 진전을 보이면서 첨예한 가치충돌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기술독점'의 문제이다. 평소 이러한 부분이 지금 우리 시대에서 신중하면서도 긴급하게 다루어져야할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이 있어서 관심을 더 집중해 읽어나갔다. 이 문제는 결국 책 띠지 뒷쪽의 카피문구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 How I Ate My Father / 이것은 1만 년 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불과 발전된 석기 기술을 나누어 모은 인류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