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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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가득한 밤 너머 저만치쯤에 새벽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표지가 참 예쁜 책이다. 미술 이야기를 담으려면 이정도는 되줘야지, 라며 즐거이 책장을 펼쳤다.
하루의 '처리해야할 일들'을 모두 마치고 맞이하는 밤의 노곤한 기분은 한가로운 마음을 만나 조금쯤 달달해진다. 그런 시간에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는 건 책이거나, 음악이거나, 그림이거나.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한밤에 발끝을 톡톡 차며 편안히 보고 읽을만한 책이었다. 화가들의 삶과 그림이 전해주는 이야기, 그림에서 읽어낸 사색들을 편안하고 할랑하게 담고있다. 그렇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여기 소개된 열다섯 명의 화가와 열다섯 곳의 미술관들 중 이미 알고 있는 화가나 이미 다녀온 미술관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올 봄의 유럽여행에서 꽤나 여러 곳의 미술관을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를 새로 갈아치우고 싶을 만큼 매번 즐거운 경험이었다. '역시 고흐야', 했다가는 '르네 마그리트를 내 인생의 화가로 삼아야겠어', 했다가는 며칠 후엔 마티스나 코로나 혹은 또다른 누군가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수많은 화가들 중 몇몇을 이번 책을 통해 만났다. 내가 사랑해야할 화가들과 그림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처음 소개하고 있는 작품은 포드코빈스키(폴란드)의 <광분>이다. 그야말로 광분하여 날뛰고 있는 검은 말, 그리고 그 말 위에 올라탄 벌거벗은 여자. 그 여자는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올라타 있다. 이 그림은 1894년 전시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말과 여인의 대비가 정말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화가 자신이 며칠 뒤 이 그림 속 여인을 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뒷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그림에 얽히 이야기가 그림만큼이나 극적이다. 젊은 화가의 광적인 슬픔과 분노가 담겨있을 이 그림은 지금 복원되어 폴란드 크라쿠프 국립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하니, 폴란드에 가야할 이유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그네>라는 작품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프라고나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잇는 작품은 <책읽는 소녀>이다. 잔뜩 집중해서 발그레 달아오른 뺨을 한 소녀의 모습, 무언가에 몰입한 순간이 주는 팽팽한 긴장이 아름답다.

2007년, 그녀의 필름이 발견되면서 순식간에 화제를 모았던 비비안 마이어도 소개되어 있다. 영국의 미술 평론가 로라 커밍은 자화상을 '진실을 드러내는 특별한 수단'이라고 했다는데, 그녀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피사체는 잘 알려진대로 그녀 자신이었다. 여러개의 가명들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 수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는 마이어는 다만 사진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고 싶었던걸까. 사람들이 그녀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그녀를 누구로 생각하던, 그녀의 본질적인 정체는 달라지지 않은 채 스스로가 찍은 사진 속에 담겨 있는 셈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존재 위에 덧씌워진 것들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존재' 그 자체였다. (55쪽)" 그녀의 사진 중 아직 인화되지 않은 것이 13만5천 장에 달한다고 한다. 그녀가 보여주고자 했던 세계를 언젠가 더 만나보고 싶다.

특별히 게으른 하루를 보내고 마음이 불편한 날에는 존 윌리엄 고드워드의 <달콤한 게으름 Sweet to do nothing>을, 내 속의 너무 많은 내가 부담스러웠던 날에는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을 펼쳐보고 싶어질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문장에 밑줄을 그을 것 같다. "실레의 강렬한 자화상들은 말하고 있다.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자아'가 있다는 생각. 그것은, 허구라고. (126쪽)"

한없이 낮은 곳에서, '더딤'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모래 만다라는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번쯤 보았던 기억이 있다. 결코 세워지거나 관객의 시선을 받지 않은 채, 완성되면서 다시 흩어져 無로 돌아가 강물로 흘려보내진다는, 모래로 만드는 만다라. 만다라는 '본질을 얻는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승려들이 얻으려는 구도의 본질은 모래 만다라를 만들고 허무는 과정일뿐, 그 결과물은 결코 아닌 셈이다. 작가의 글처럼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외연의 형태가' 하나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한 화가의 삶, 한 점의 그림에도 무수한 사연과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무수한 화가들과 그림들이 있다. 부지런히 미술관이나 전시를 찾아다닌다 해도 내가 직접 마주할 수 있는 화가와 그림은 비록 그 중 너무나 적은 일부이겠지만, 미술을 이야기하는 좋은 책들, 예쁜 책들이 있어, 책을 통해서나마 문득 너무나 사랑하고 싶은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결정적인 한 장면에서 문득 비루한 인생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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