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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평범, 이렇게 싱거운 제목이라니... 그렇다면 읽어줘야지.
그렇게 읽게된 책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자질구레한 사건과 감정들도 소설이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몇번이고 했으니 정말이지 내용에 딱 맞는 제목을 붙인거라고 해야할 것 같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들이 묶여있는데, 각기 다른 인물들이 다른 상황 속에 있지만 그들이 가지는 일관된 정서라면, 뭔가 또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도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과거의 선택들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살면서 아무리 많은 선택지가 놓여져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그러니 우리가 살 수 있는 인생 역시 하나 뿐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숱한 갈림길을 지나고 지나 단 하나의 일직선 길이 된다. 그리고 순간순간 가지않은, 혹은 가지 못한 길을 떠올리며 살게 되는게 아닐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면,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일을 그만뒀다면, 어느 쪽을 택하든 반드시 택하지 않은 쪽을 상상해."
단편 '오늘도 무사태평' 속 사토코을 말이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블로그를 통해 전하며,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보이도록 살짝 덧칠을 하기도하고 초라한 흠집은 슬쩍 바닥에 흘려버리기도 하는 그녀의 모습은 개인 미디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단지 수위의 문제일뿐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그리고 사토코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블로그를 통해 지금 나는 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보여 주고 싶은 건 (중략) '만일'로 헤어진 나 자신이다. 그때 아사히에게 매달려 헤어지지 않은 나. 자포자기한 상태로 신이치와 만나지 않은 나.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나...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을 무수한 '나'에게 나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내게 선택받지 못한 수많은 '나'에게 행복한 나를 보여야 했다.
타이틀 단편인 '평범'에서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여고시절의 단짝을 만나 한나절을 보내게 되는 기미코의 심리를 쫓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결국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불행일까, 행복일까.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은 '달이 웃는다'인데,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용서'라는 키워드가 강하게 다뤄지고 있다. 평범한 인생에 불만이 없는 결혼 6년차의 그에게 어느날 아내 후유미가 이혼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걸 알게된다. 처음에는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분노에 휩싸이고, 그로 인해 평소라면 경멸했을만한 행동도 (스스로 인식하는 가운데) 스스럼없이 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용서'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로써 자신을 되찾게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용서'는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서하지 않는 일 또한 어렵다. 용서함으로써 복잡한 관계와 감정은 일순간에 정리되어버리지만,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와 파생된 감정들은 언제까지고 나의 일부로 남아있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런줄 알면서도 어려운 '용서'. 단편을 읽으며 용서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