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하자면, 문득 한국 소설을 읽고싶어진다. 나의 경우 분명 한국어로 매끄럽게 번역되어 있다해도 외국 작가의 소설들을 읽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 비슷한 느낌은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언어의 문제이기도 하고,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지 않을까... 물론 그저 기분 문제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문득 한국 소설이 읽고 싶어, 며칠 전 문고에서 신간 코너를 유심히 살펴 고른 책이 김 숨의 <당신의 신>이다. 모두 3편의 단편이 실린 얄팍한 단편집인데, 읽어보니 그 중 '이혼'은 이미 읽었던 글이었다. (어디서? 모르겠다)  그리고 소설 세 편에 공통된 주제어가 바로 '이혼'이다.

인간 관계의 복잡함과 어려움은 언제나 이야기되는 소재이지만, 부부사이는 그 어떤 인간 관계와도 같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완전히 다르다. 최소의 관계단위로서 깊은 연결감과 피상적인 '앎' 사이 어디쯤을 떠돌로 있다고 해야할까? 또한 '두 사람을 하나로 간주하기'라는 사회적 시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폭력이 숨어있게 마련이라는걸 작가는 소설 '이혼'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읍산 요금소'의 정산원인 그녀 역시 이혼을 했다. 그녀는 좁은 공간에서 밖과 소통한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밖을 받아먹으며 영원 속에 갇혀버린듯한 느낌을 준다. 바깥의 것들이 내 것 같기도 하고, 바깥의 누군가가 나 같기도 하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하이패스 구간을 통과해 도시를 빠져나간다. 1.5톤 트럭 적재함에 실린 세간들이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의 것 같다. 그녀가 읍산요금소 부스를 지키는 동안, 그녀의 원룸 세간들이 꾸려져 다른 도시로 보내지는 것 같다.(73쪽)
그녀는 잠든 여자를 조수석에서 끌어내려 부스에 앉히고, 자신이 조수석으로 가 앉고 싶다. 잠든 여자의 인생을 통째로 빼앗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렬해, 도리어 여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빼앗긴 것 같은 박탈감마저 든다.(86쪽)

요금소를 지나 햇빛 요양원, 화장장, 납골당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에서 이 요금소는 마치 죽음의 입구 같은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그랜저 승용차, 이름이 같은 폐쇄된 요금소의 존재는 '그녀'가 영원히 제자리인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는 상상을 북돋운다.

마지막 단편 '새의 장례식'은 보다 복잡한 이야기로 읽혔다. 너무 다양한 층들이 겹겹이 쌓여있어, 부드럽고 달콤해도 막상 손대기 힘든 무지개 쉬폰케익 조각처럼 보였다.

만일 우리가 너무 가까워서 안보이는, 너무 작아서 안보이는, 그런 고통에 공명할 수 있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