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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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도로 위의 작은 돌멩이 같다. 누군가는 그것을 밟고도 무심히 지나간다. 누군가는 걸려 넘어지고 만다. 사람이 넘어진 자리를 본다. '왜 넘어졌지?' 하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먼지가 흩날리고, 그들은 다시 제 길을 간다. 돌멩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누구든 치울 수 있지만, 누구도 치우지 않는다. 그렇게 길은 계속된다. 넘어지는 것은 언제나 같은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아니, 보려 하지 않는다. 그곳에 돌멩이가 있는지조차 잊고 산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 돌멩이가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차별은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바닥에 깔린 무늬처럼, 오랜 습관처럼,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세상은 공정하다"고. "차별 같은 건 이제 없다"고. 하지만 누구나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길은 지나치게 부드럽고, 어떤 길은 멀고 험하다. 그것이 차별의 얼굴이다.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더 뿌리내린다. 내가 걷는 길이 부드럽다면, 그 부드러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의 길은 늘 자갈밭이고, 늘 경사가 져 있다. 나는 그것을 모른 척한 채 걸어왔다. 돌멩이를 치우는 일보다, 그것이 거기에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 먼저였다. 불편함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견디고 감수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씩 짚어보아야 할 것. 그것이 차별을 깨닫는 첫 번째 신호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다른 이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어야만 나는 나를 속이지 않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리뷰들을 찾아보았다. 책이 극단적이라는 평들이 많았다. 너무 많은 차별이 나열되어 있어서, 너무 무겁고 숨이 막혀서. 사람들은 불편해했다. ‘이렇게까지 많다고? 세상이 정말 이런가?’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것은 잊히기 마련이고, 익숙한 차별은 더욱 그렇다. 어쩌면 불편함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차별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수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일 테니까.



나는 계속해서 불편함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물론, 길고 지루한 터널 같은 이야기겠지만, 그 끝에서 언젠가는 빛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빛이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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