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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19
최영아 지음 / 북극곰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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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쨍쨍한 마른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릴 때마다 엄마가,
"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네"
하시는 얘기를 듣고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관련 설화를 찾아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읽은 설화와는 느낌이 조금 다르지만, 여우비 설화를 조금 각색해 따뜻하고 부드러운 민화로 표현한 그림책을 만났다. 책을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여우비라는 제목과 여우신부의 댕기가 알록달록 반짝이는 표지부터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내 마음이 소리친다.
"무조건 이건 소장해야해!"
기존 설화가 스포인 이 책은 내용을 알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구름이 꽃향기가 솔솔 나는 산골마을을 발견하고 거기서 여우를 만나 마음이 설렌 순간을, 여우의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계속 곁에 머무는 동안의 사계절 모습을, 여우와 친구들의 안녕을 위해 온 몸을 다해 마을을 지키는 구름을, 그토록 사랑하는 여우가 호랑이와 혼례를 치르는 걸 보고 마음이 찌르르 아픈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마른 하늘에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여우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고 행복을 빌어주는 구름을 민화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입이 떡 벌어졌던 장면은 여우와 호랑이의 혼례식 그림이다.연꽃이 가득한 호수 위 전통혼례복을 입은 둘, 그 뒤로 펼쳐진 병풍, 양 옆에 걸린 청사초롱, 그 곁을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 그림책이 아니라 한편의 민화작품집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우를 향한 구름의 애달픈 짝사랑을 보다보니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생겼던 10살의 내가 떠올랐다. 학교운동장에서도 기다려보고 그 아이 집 앞에서도 괜히 서성였던 풋풋하고도 아팠던 나의 첫사랑.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며 뛰어가서 짝이 되고 싶은 남학생을 고르라는 선생님의 미션에 제일 먼저 달려가 그 애의 뒤에 서고도, 막상 그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같이 서자 슥 양보하고 빠졌던 때의 서글펐던 마음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눈물이 고일만큼 속상했지만 좋아하던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고 그저 좋아서 스스로 마음을 달랬던 경험이 있는 나는 그래서 구름이 너무나 아팠다. 비가 되어 내린 그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다.
너무 순수해서 더 애달픈 구름의 짝사랑 이야기를 더없이 한국적인 그림으로 예쁘게 표현한 최영아 작가의 <여우비>는 아이들에게는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과 설화에 대해 알수 있는 기회를,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릴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만약 주변에 한국적인 것에 관심많은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선물용으로도 주저 없이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