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구실 - 서정인 창작집
서정인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국내 작가로는 서정인 님을 꼽는다.

약 15 년도 전 쯤에 단편집<해바라기> 를 읽고 뿅 가서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팬레터도 보냈었다. 영광스럽게 답장도 받았다.

그 이후 계속 새 소설이 출간되면 빠지지 않고 구입해 읽었고

아주 이 전에 쓰여진 작품들은 품절이 되어서 구하지를 못했다.

<물치>, <철쭉제>,<뒷개>,<봄꽃 가을열매> 등이 간절히 구하고 싶은 목록이다.

우선 이 분은 영문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외래어는 몽땅 한글로 바꾸신다.

오토바이는 이륜자동차 브래지어는 젖 가리개, 핸드백은 손가방, 180  센티미터는 육 척,

문장은 판소리를 듣는 듯 경쾌하고

어조는 가히 독설적이고 날카롭고 세상 부조리한 곳을 파헤친다.

그러면서도 시종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읽다 보면 손이 닿지 않는 가려운 곳을 후벼 파듯 등줄기가 시원하고

통쾌함을 느낀다.

'

"먹고 살자고 허는 도둑질은 괜찮단 말이오? 먹기 전이나 먹은 뒤나, 범죄는 범죄요."

"사람의 기본권은 인정해야 할 것 아니냐? 행복 추구권은 놔두고, 생물의 생존권 말이다. 도둑질을 못하게 하려면 밥을 주고, 밥을 못 주었으면 도둑질을 하게 해라. 그것은 권리라기보다 의무다. 아린 자식들을 쏴 죽이는 것이 동반자살이냐?"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 허냐? 이천억이면, 한 끼 천 원짜리 백반으로 만 명을 하루 세 끼씩 얼마 동안이나 먹여 살리겠냐?"

"이천억을 천 원짜리 만 명, 천만 원으로 나누면, 이만, 이만을 세 끼로 나누면...십팔 년이요."

"십팔 년이냐? 그건 산술적 답이고,사회적 답은 아마 씹팔 년이 아닐 거다. 그 돈은 구황이 아니라 그보다 더 급한 용도로 꼬불쳐졌다."

"구휼보다 더 급한 것이 무엇이요?"

"잘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이다. 그 돈은 그들의 것이고, 그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남이 굶어죽는 것은 내가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고급여관 식당에서 십만 원짜리 중국 요리에 이십만 원짜리 불란서 포도주를 마시면서, 동반 자살 기사를 보고 혀를 끌끌 찬다. 아무렴, 죽을 용기면 무슨 일을 못 해, 새끼들이 무슨 죄야."-204~205쪽

얼마 전 한반도 대 운하 지지와 반대 두 파를 보면서

'입장 없는 입장' 이라는 표현을 쓴 지인이 있었다.

그런 경지.....

우리는 다 나름대로 입장이 있다.

그 입장들이 서로 달라서 상충한다.

절충선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더 옳고 덜 옳고 더 그르고 덜 그른 입장은 누가 정하는 걸까?

서정인님의 소설은 텅 비어가는 내 머리통 속에 작은 생각의 씨앗을 툭 던져준다.

그렇게 자빠져 늘어지지 말라고,

뭔가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내겐 몹시 아프고 얼얼하고 짜릿한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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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jin 2008-03-23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써 보는 리뷰로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