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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와 사랑 ㅣ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35
헤르만 헤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지와 사랑...
어쩌면 서로가 대립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내면 세계에 있어서 이성과도 같은 존재인 지(知)와 감성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사랑은 서로 상반되는 관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난 이들 두 세계가 '인간'이라는 하나의 본질로 융합되어야만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이라는 작품을 통해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마리아브론'이라는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그 곳에는 생활과 교육과 연구가 있었으며 경영과 다스림이 있었다. 또한 그 곳에서 온갖 예술과 학문이 전수되었다. 종교적인 것도, 세속적인 것도, 밝은 것도, 어두운 것도 모두 그러한, 그 수도원에서 두 주인공,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나르치스는 마리아브론 수도원의 철학자로, 나로 하여금 차가운 인상을 느끼게 해 주는 인물이었으나, 그에 반해 수도원의 학생으로 들어온 골드문트는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나르치스가 명상가요 분석가라고 한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이며 동심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는, 서로가 상반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와 사랑의 대비되는 모습을 비추기라도 하는 듯...
그들은 그렇게 다른 서로의 모습에서 공통점- 눈에 띄게 두드러진 재능과 특징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찾아냈고, 그것은 그들을 깊은 친구의 관계로 만들어 주는 매개가 되어주는 듯 했다. 그러나 그들의 겉모습의 대비만큼, 그들의 삶의 운명 또한 대비될 수 밖에 없었다. 나르치스는 수도사의 길을 걷기 위해 수도원에 남아 오랜 수도를 하고 골드문트는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먼 훗날 나르치스는 그 동안의 수도생활로 수도원장이 되어서, 골드문트는 방랑생활 속에서 애욕의 예술가로, 고통과 쾌락, 출생과 사망 등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후, 그 둘은 재회를 하게 된다. 그들은 다시 만나 서로의 부족했던 점을 깨닫고 우정으로 맺어진다. 그리고 골드문트는 지와 사랑의 조화인 마리아상을 제작하고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야기가 종결되어가는 부분에서 난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마음 속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우리 내면에 있는 지와 사랑의 모습이며 더 나아가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보여 주는 듯 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재회가 의미하는 것이 지와 사랑의 융합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골드문트가 죽기전에 조각한 마리아상이 그 형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만남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지와 사랑의 조화 또한 필연적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과연 내 내면 속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와 사랑 모두가 동등하게 자리하고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 쪽만이 심하게 결핍되어 있지는 않는지 난 내심 나의 그 동안 생활을 돌아보았다, 아니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내 심리적인 변동을 살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사랑'보다는 '지'에 그 중요성을 더 두고 있는 듯 했기에 난 내 자신에게서 실망과 동시에 그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는 데에 대한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겉으로 말하는 것은 '지와 사랑'의 조화일 것이다. 지는 현명하지만 냉철하고, 사랑은 현명하지 않지만 따뜻하다. 그 둘은 언뜻 보기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서로 대립되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둘이 통일된다면 지의 냉철한 면을 사랑이 감싸줄 수 있으며 사랑의 현명하지 못한 면을 지가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즉 다른 두 세계가 합해지면서 지혜롭고 아름다운 하나의 큰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선과 악, 이성과 감성 등 인간 내면에 수없이 많은 두가지 갈래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참 모습을 일깨우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와 사랑, 진실과 아름다움이 하나로 통일되고 조화를 이룰 때의 모습이 비로소 참된 인간상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