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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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 슬로우 라이프를 꿈꾸다.

    

*무엇이 필요한가? 숨 쉬는 것 외에, 배고픔을 면하는 것 외에, 살아있음을 감지하는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P.21)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그리고 밥을 먹는 것. 또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저자에게 나는 할 말이 많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 25, 욕심 많은 나에겐 삶이란 아직 복잡하고 어렵다. 세월이 흘러 내가 저자의 나이가 된다면 나도 절제하고 단순해지는 일상을 꿈꾸고 있을까.

 

책을 읽은 후, 저자가 슬로푸드 한국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계신 것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 슬로우 푸드는 공정한 재배과정을 시작으로 깨끗한 재료와 올바른 식사를 지향하는 건강한 삶을 꿈꾼다. 그 철학과 함께하는 이 책은 슬로푸드의 주최로 북콘서트도 진행하였다.

 

사실 나는 작년 교내에서 진행하는 해외학술탐방의 참가 주제로 '슬로우푸드'를 선택했다. 자취와 기숙사생활을 하던 나의 식생활은 학교 주변 값싼 음식과 인스탄트 식품이 중심이었다. 그렇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슬로푸드 한국협회 관계자분 그리고 청년대표님과 인터뷰도 진행하고 많은 자료들을 공부하며 준비하였다. 최종 합격 후 유럽으로 건너가 시장조사와 거리 인터뷰, 슬로푸드 독일 청년대표와 인터뷰 등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현지탐방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행기 연착과 숙소에서 생긴 문제는 슬로푸드 본부로 가는 기차를 놓쳤고 예상치 못한 지출로 식비를 아끼기 위해 끼니를 맥도날드 햄버거로 때웠다. 슬로푸드 운동의 시작이 맥도날드 반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외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며 한 여름 유럽의 뜨거운 태양 아래 숨 쉬는 것도,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버거웠다. 꿈꿔왔던 상상의 나라 유럽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괄목할만한 결과는 없었고 슬로푸드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문성희의 밥과 숨'을 통해 다시 그 철학을 만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먹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잠자리에 드는 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오늘을 잘 마무리하면 내일이 쉬워질 것이고, 새벽의 시간을 잘 맞이하면 하루의 기둥이 바로 선다. (P.35)

 

*밥상이 단순하고 소박해져야 한다. 그러면 몸이 건강해지고 덧없는 욕구가 줄어들어 삶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P.56)

 

요리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저자는, 조리사 시험을 위한 강습을 시작으로 화려한 요리의 권위자로 성장한다. 하지만 맞지 않는 옷에 억지로 몸을 넣는 허탈함이 커지며 모든 것을 버리고 도시를 떠난다. 어린 딸과 산 속에 둥지를 트고 장작을 패고 식재료를 다듬으며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굳혀간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한 당시의 생활은 딸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저자의 방황 아래서 딸이 겪었을 고통의 시간이 어떨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였다면 과연 견딜 수 있었을지 확신은 없다.하지만 그 시간은 저자와 딸 모두에게 삶을 지탱할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소박한 밥상을 차리며 찾은 안정으로 자신의 옷도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자연속에서 이제 몸에 맞는 옷을 찾았다. 마침내 요리하는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요리와 함께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자연요리라는 것은 사실 내게는 어렵다. 저자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터득한 굳은 심지를 내가 안다는 것은 아직 불가능하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수수한 음식보다 다채롭고 호화로운 음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나의 전공은 식품의 효과적인 가공 기술과 대량 생산을 배운다. 자연요리와는 정확하게 정 반대의 방향에 서있다.

 

자연요리의 맛이 어떠한지 문자로는 배웠지만 몸에 와닿지는 않는다. 저자와 딸은 '시옷'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을 요리한다. 금요일 하루 점심에만 예약으로 그 밥상을 맛 볼 수 있는데 꼭 한번 가봐야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찰나를 지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갖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나의 느낌과 생각은 나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P.154)

 

히말라야의 고산지대를 오르고 인도의 명상학교에서 수행을 거치며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단순하게 비워간다. 새벽 명상과 절제하는 식습관으로 일상의 법칙을 지키기도 하고 다시 또 어겨보며 계속해서 자신의 실험을 진행한다. 많은 경험과 인연을 쌓은 저자는 이제 여행에도 모임에도 미련이 없다. 삶을 채워가는 단계에 서있는 나에겐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같지만 현재 저자가 고민하는 월다잉(well-dying)은 결국 나에게도 주어진 숙제이다.

 

이렇듯 책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음식은 나의 몸으로 들어와 내가 된다.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에 달렸다. 결국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임을 알고, 소박한 재료가 만드는 건강함에 저자는 남은 삶을 걸었다.

 

*어떠한 상황도 변화될 수 밖에 없으며, 어떠한 상처도 아물 수 밖에 없다.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변화될 수 있다.( P.171)

 

저자의 첫번째 결혼생활은 짧았다. 스무살부터 함께한 남자친구이자 남편은 스물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세월과 함께 외할머니와 이모님, 어머님은 차례로 저자의 곁을 떠나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별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는 두려움에 숨이 탁 막혔다. 언젠가는 나에게 벌어질 순간일 것이다. 꼭 죽음과 이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기쁨보단 더 자잘한 절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그래도 그 순간순간 나를 잃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응원한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애쓰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밝아졌고 행복했다. 이처럼 요가의 길은 쉽고 단순했다. (P.195)

 

저자는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한 뒤에 깨달았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사실 나도 한달 전부터 매일매일 요가학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아직은 잡생각도 많고 몸도 뻣뻣해서 힘이 든다. 약간의 즐거움과 이미 낸 수강료가 지속의 이유다. 곧 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집중하는 시간이 되어 내 삶에 좋은 영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내게 애쓰지 말라는 말은, 지금 무엇이든 더 해야한다는 불안함으로 떠도는 나를 잠재울 수는 없다. 당장 마음을 비우고 소박한 밥상을 차리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내 존재를 인정하고 더 사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고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싶다.

  

이어서 한번 쯤 도전해볼만한 저자의 10가지 죽 요리와 저자의 딸의 혼밥요리 10가지가 나온다.

정갈한 사진과 덧붙인 글들은 책을 보는 것 만으로도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 책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 사람의 요리인생이 담겨져있다. 건강한 몸과 소박한 마음 그리고 그것의 기반이 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있다. 누구나 먹는 음식이기에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정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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