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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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 소설 내용을 전혀 이해 못하는, 아주아주 '순탄하게 살아온 여자'라면 좋겠다고. 엄마를 잃은 7살 여자아이, 돈을 주지 않는 남편을 가진 고모, 공부를 잘해야한다는 강박에 자꾸만 음식을 먹는 사촌 언니, 눈부신 거짓말을 자꾸만 늘어놓는 루비, 아름답다는 이유로 공격당하는 루비 엄마, 개처럼 끌려다닌 할머니 등.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나이가 적든 많든 아픔이 겪었거나 겪고 있다.

불공평하다. 아니, 치사하다.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은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가. 여름의 아빠 상아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어도 집안의 돈을 가져다 써도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고 다녀도 사랑받는다. 고모부는 두 집 살림을 한다. 루비 아빠는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루비 엄마를 학대한다.

물론 시대가 달라지긴 했다. 그러나 완전히 달라졌을까? 여성의 지위나 여성의 권리는 눈곱만큼 변한 게 아닐까.

성 접대를 받은 사람이 버젓이 국회의원을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성범죄 경력이 있어도 선거에 나올 수 있는 나라에서 피해자에게 왜 그 시간에 그렇게 입고 돌아다녔냐고 야단치는 판사가 있는 나라에서.

사실 나는 두렵다. 여섯 살 딸을 데리고 기차를 타면서도 지하철을 타면서도 두려웠다. 떠든다고 누가 눈치를 주면 어떡하지. 그 누가 남성이면 어떡하지.

나는 두렵다. 딸이 점점 볼살이 빠지고 팔다리가 길어지고 원피스를 입는 걸 좋아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런 아이를 누가 이상하게 바라볼까봐.

피해망상 아니냐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추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평범한 한국 여성인 나에게는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대학생 때 밤 버스를 탔는데 내 옆자리에 아저씨가 앉았다. 내 코트 자락 밑으로 손가락이 움직였다. 깜짝 놀라 코트를 휙 잡아당겼다. 그러고도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내릴 때까지 몸을 움치리고 있어야 했다.

15년 전 교직에 들어섰는데 그때도 누가 말했다. 커피 좀 타주라고. 회식 때 노래방 따라갔다가 블루스 추자고 해서 도망갔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미용실에 나와 여자 원장님 두 명만 있을 때 술 취한 아저씨가 와서 30여 분 가까이 성희롱 발언을 하였다. 여자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 눈을 번들거릴 때 두려움을 느낀 건 당연한 일 아닐까.

딸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한 번씩 슬퍼진다. 어린이집에서 성교육과 안전 교육을 열심히 받는 세상이다. 모르는 어른의 호의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몸을 절대 보여줘서도 안되고, 만지게 해서도 안된다고. 왜 이런 교육을 어린이가 열심히 받아야 할까? 어른들을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어야 한다. 여름과 루비의 우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루비 엄마에게 일자리를 주는 고모가 든든하다. 여성이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설 때까지 옆에서 따뜻하게 지켜주는 또다른 여성이 있다. 여성이 여성을 구원하는 서사가 낯설지 않다. 이런 이야기는 더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하물며 이렇게나 문장이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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