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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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건축에 관심을 가졌던 건 5년 전쯤이었다. 알쓸신잡이 한창 방송되고 있을 때였고,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축가가 도시의 건축물을 통해 풀어내는 사회와 경제, 문화, 심리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가 그렇게 흥미롭게 다가온 게 처음이었다. 도시를 단순히 건축학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문학적 시선과 결합해서 보는 게 인상깊었던 것 같다. 이후로 쉽게 풀어 쓴 건축 교양서를 찾아보다 이 책도 읽게 됐다.

저자가 한국과 파리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라 그런지, 한국의 건축과 외국의 건축을 비교하서 설명하는 부분이 많은데 필자는 그런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한국과 유럽 각각이 고안한 횡단보도 앞 신호 위반 방지법을 대중의 양심을 믿는 문화와 도시 시스템을 믿는 문화의 차이로 설명하는 부분, 지하철 내부 벤치의 구조적 차이를 공동체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차이로 설명하는 부분 등이 그랬다. 비교를 하면서 어느 한 곳만을 부족하다 이야기하지 않아서 좋았다.

집에서의 거주 시간과 생활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향에만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모순을 지적한 부분도 인상깊게 봤다.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구조의 남향집에 사는 가족 구성원 각각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대를 측정해보니 해가 드는 남쪽의 안방과 거실은 해가 진 후에나 사람이 들기 시작했고, 북쪽에 있는 주방과 아이들 방은 오후 내내 형광등을 켜 놓고 사용하고 있어서 사실상 북향집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가족의 개인화, 파편화의 원인을 기족실의 역할에서 찾고, 실제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동 공간을 재구성하는 주택 시장의 시도를 소개해 주는 부분도 새로웠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와 가족에게 더 좋은가를 생각(101p)'하고 살 집을 선택해야 한다는 기본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깨달음을 얻은 부분이었다.

인문학적 시선을 가진 건축가의 시선을 통해 익숙해져 보이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다. 새로 알게 되는 것도, 저자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생각해 볼 만한 지점도 많았다.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해 자세히 몰랐을 때는 건축이라는 주제, 피렌체 비엔날레 최고상을 최초로 2회 수상한 작가의 경력,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자 이방인의 시각이라는 소개에 끌려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책을 다 읽은 독자로서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의 사려 깊고 세심한 시선이 이 책이 가진 가장 좋은 점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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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문제에서 개인의 버릇과 선호는 '옳다, 그르다'로 따져지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유아 시절 가족생활에서 체화한 감각적 경험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다. 자신과 맞지 않는 공간은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지만, 아무도 왜 그런지는 자문하지 않는다. 익숙함에 기인한 좋다, 싫다만 있을 뿐이다. 건축가가 아닌 이상 이렇게 사는 게 경제적인지 저렇게 사는 게 더 합리적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108p)

• 공간은 내 몸이 직접 체험하는 경험적 장소가 된다. 이른바 '장소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간을 다루는 연금술은 공간의 모든 면을 막아도 사방이 열린 것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고, 모든 면을 다 열어도 꽉 찼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오묘하고 미묘한 과정이다. (160p)

• 모든 건물과 상업 공간이 그런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욕망에 병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죽기 살기로 자신을 알려야 한다는 생존가 성공을 향한 강박관념만이 돋시를 지배한다. 마천루가 매일 기록을 경신해 봐야 승자는 계속 패자로 바뀌고, 경쟁에 끼지 못한 대부분의 시민은 어둠 속에 살게 된다. 서울은 그렇게 비슷하지만 다른 이유로 라스베이거스와 맨해튼이 되어 간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알리기 위한 사투는 결국 누구도 승리할 수 없는 매트릭스 내부의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높아지기만 하고 커지기만 하는 이 끝없는 경쟁의 행군을 서울 내부 사람들은 과연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192p)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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