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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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적의 글솜씨는 노랫말을 통해 익히 알려진 터라 저자 이적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꼈다. 음울한 일러스트와 표지는 더욱 흥미를 부추겼다. 서둘러 책장을 펼쳤다.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12개의 문! 그 문은 열고나올 때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있었다. 난 그 세계에서 이적의 정신세계를 엿보았다. 어른 이적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아이 이적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우선 어른 이적을 찾아보자. 어른 이적은 판타지 속에 교묘히 현실을 담아 비판한다.『‘활자를 먹는 그림책』의 ‘그림’은 반란을 꿈꾸는 ‘소외받는 이웃’이 아닐까. 『음혈인간으로부터의 이메일』은 곧 동성애자를 떠올리게 했다. 『제불찰씨 이야기』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귀는 남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고 싶은 말만 듣기 위해서 있으니까. 『고양이』는 말만 무성할 뿐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음모론이다. 『자백』을 읽고 있자니 꽤 오래 전 있었던 한 사건-공중전화를 오래 쓴다는 이유만으로 뒤에서 내려친 사건-이 뇌리를 스첬다. 표제작『지문사냥꾼』의 ‘지문사냥꾼’은 현실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녀를 짓밟는, 권력으로 민중을 짓밟는 ‘인간사냥꾼’이 있다. 파이프를 치며 짧은 수신호를 주고받지만 날이 밝으면 여전히 낯선 관계일 뿐. 소통을 꿈꾸면서도 단절 속에 사는 현대인들. 『S.O.S』라도 치지 않으면 숨통이 막힐 것 같다. 『모퉁이를 돌다』의 나는 ‘살라’는 명령에 절망한다. 왜? 삶은 결코 죽음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퉁이를 돌아 죽음의 세계로 몸을 던지려는 순간 들리는 명령. 이 명령은 인간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아이 이적은 여전히 외계인의 존재를 믿으며 『외계령』을 꿈꾼다. 그리고 비올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장 먼저 찾지만, 해가 떠오르면 뒷전이 되기 일쑤인 우산에게 새 삶을 부여한다.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에서는 어른의 코드가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 이적이 쓴 글로 보고 싶다. 꿈은, 우산들이 꾸는 꿈은 어른보다 아이의 것이니까. 『독서삼매』에서는 차마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소년 이적이 그려진다. ‘피아노’와 소통하는 아이 이적이 가수가 되는 건 운명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피아노』를 쓰는 이적은 질투가 난다.

앞에서 썼듯이 난 저자 이적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결코 ‘기대’는 아니었다. 소설은 노랫말이 아니니까. 소설이 어디 글솜씨만으로 되는 장르인가. 그러나 이적은 적어도 내 기대는 충족시켰다. 내개 이적은 단편집《지문사냥꾼》의 저자다. 그럼에도 별 다섯은 주지 못하겠다. 그 이유를 자백하자면 재주 많은 사람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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