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여정 - 조지프 캠벨이 말하는 신화와 삶
조지프 캠벨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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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책은 내가 마음속 스승으로 사숙하고 있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입니다. 이 책은 캠벨의 책 가운데 가장 읽고 싶은 책이어서 몇 년 전에 원서를 구입하고 책의 모태가 된 동명의 영화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드디어 국내 번역본이 나온 겁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게다가 출판사도 책 잘 만드는 갈라파고스이고, 뛰어난 번역자인 박중서 님이 우리말로 옮겨서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바로 책을 주문했습니다. 아직 서점에 깔리지 않은 상황이어서 평소보다 며칠 기다려야 했습니다. 책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음이 설렜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입니다. 마침내 도착한 책의 첫인상도 표지부터 본문 디자인까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책을 만난 첫날은 읽지 않고 곁에 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오랫동안 그리워한 이를 만나는 마냥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다음 날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책이 두꺼워서 오래 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쓴 책도 누군가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한 적이 있을까?’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앞으로 쓸 책도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전해질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원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흐트러지기 쉬운 글쓰기의 마음가짐을 다잡아 봅니다.


 

<영웅의 여정>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마침 얼마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책 쓰기 수업에서 캠벨이 동서고금의 영웅신화를 비교 분석하여 정립한 영웅의 여정(The Hero's Journey)’을 소개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교육이 연기되어 아쉬워하던 차에 이 책과 만났습니다. 덕분에 다음 수업에서 영웅의 여정을 멋지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웅의 여정은 세계 각지의 무수한 신화에서 발견되는 원형적 패턴인 동시에 성장과 자기실현의 보편적 과정입니다. 이 패턴은 삶에 그대로 적용되고, 한 권의 책을 쓰는 과정도 영웅의 여정을 따릅니다.


 

영웅의 여정이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 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영웅 후보자는 모험을 떠나고 모험이 영웅을 만듭니다. 달리 말하면 영웅의 전제 조건은 모험이고 모험이 영웅을 완성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웅은 아이언맨 같은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진정한 나입니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살려내는 과정이 곧 영웅의 여정입니다. 이렇게 신화와 인생은 연결됩니다. 조지프 캠벨은 말합니다.

 


돌이켜보면,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영웅이 애써 찾아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神的)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 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 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캠벨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캠벨 사상의 골수입니다. 진정한 내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캠벨이 제시하는 답은 한 문장입니다.


 

그대의 희열을 따르라(Follow your bliss).”


 

책에 나오는 캠벨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볼까요?


 

최상의 교훈은 무엇인가? 최상의 교훈은 당신의 친구들을 즐기라는 것이다. 당신의 식사를 즐기라는 것이다. 놀이가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 놀이에, 즉 삶의 놀이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커다란 기쁨이라고 한다.”


 

당신이 희열을 따르게 되면, 이전까지만 해도 문이 없었던 곳에서, 차마 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법한 곳에서, 심지어 다른 누군가를 위한 문조차도 없을 법한 곳에서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자기만의 희열(bliss)’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영웅의 여정입니다. ‘진정한 나희열’, ‘영웅의 여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이 주제에 대해 캠벨보다 훌륭한 안내자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캠벨은 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일깨우고 영감을 주었습니다. 말년에 조지프 캠벨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거야말로 딱 내가 원하던 거라네. 즉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신화를 인생이라는 숭고한 모험의 반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고 신화에 새로운 삶을 불어넣는 것 말이네.”

 


이것이 그의 소명이자 블리스였습니다. 그렇다면 캠벨은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정신과 소명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의 책과 함께 말입니다.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나처럼 그를 사숙하는 많은 이들이 있으니까요.


 

<영웅의 여정>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영웅의 여정>은 세 가지의 결합입니다. 캠벨의 삶과 그의 사상, 그리고 영웅의 여정. , 캠벨이 정립한 영웅의 여정을 뼈대로 캠벨의 삶과 사상을 교차시키며 조명합니다. 이는 책의 목차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목차에서 의 이름과 순서는 영웅의 여정의 주요 단계를 따릅니다. 각 장의 도입부에 이 책의 공저자 필 쿠지노가 해당 장의 맥락(영웅의 여정의 단계)에 맞춰 캠벨의 인생을 간단히 요약하고, 이어서 캠벨이 자신의 경험과 신화에 대한 생각을 소개합니다. 여기에 더해 책 곳곳에 캠벨의 사진과 관련 이미지를 배치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캠벨에 대해 궁금했던 점 두 가지를 풀 수 있었습니다. 먼저, 캠벨이 자신의 인생 철학의 핵심인 그대의 희열을 따르라는 발상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얻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그 답이 이 책에 아주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캠벨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궁금했는데, 책은 영웅의 여정의 패턴으로 그의 삶에서 결정적인 지점들을 캠벨의 목소리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네 삶에 신화를 연결하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유용한 아이디어도 여럿 얻었습니다. 두 개만 예를 들면 영웅의 여정모델을 적용한 캠벨의 삶을 통해 나의 인생(책 집필, 소명, 결혼 등)에도 영웅의 여정을 접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한 사람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인생 신화를 찾아내서 자기답게 성장하는데 활용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 책의 공저자인 필 쿠지노에게 감사합니다. 그는 캠벨의 제자로서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성껏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 모두를 책 작업에 오롯이 쏟은 듯합니다. 이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책이 남다른 향기를 발산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분량이 꽤 많아서 오래 읽을 줄 알았는데 3일 만에 다 읽었습니다. 나도 언젠가 존경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런 책을 쓰고 싶습니다.

 


<영웅의 여정>의 원서를 가지고 있어서 번역본을 읽는 동안 간간이 원서도 들춰봤습니다. 원서도 좋지만 국내 번역본도 그 못지않게 훌륭합니다. 번역본의 최고 장점은 정확하고 친절한 번역입니다. 책 말미에 옮긴이가 달아둔 주석이 아주 요긴하고, ‘찾아보기(색인)’도 상세해서 글쓰기와 강의에 캠벨을 자주 인용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영웅의 여정>은 캠벨에 관한 또 하나의 입문서인 <신화와 인생>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이 두 책은 상호보완적이어서 <신화와 인생>이 직업과 결혼, 예술과 종교 등 인간의 삶 전반에 대한 캠벨의 사유에 초점을 맞춘다면, <영웅의 여정>은 그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캠벨의 삶과 사상을 다룹니다. 두 권 다 캠벨의 저서들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만, <신화와 인생>은 캠벨의 강연록에 기반을 두고 있고 <영웅의 여정>은 많은 인터뷰에서 캠벨의 답변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읽는 맛이 비슷한 듯 다릅니다. 확신하건대 두 권을 함께 읽으면 캠벨의 눈부신 통찰력을 흠뻑 맛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웅의 여정>을 읽으며 <신화의 인생>의 도입부이자 캠벨의 사상적 정수를 운문 형태로 제시한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에도 한 번씩 눈길을 주기 바랍니다. 아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흥미롭게도 <영웅의 여정><신화와 인생> 두 책의 번역자와 출판사가 동일합니다. 이 책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지프 캠벨의 공식 전기 <A Fire in the Mind>도 번역되어 나오길 바랍니다. 그러면 캠벨의 진면목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풍성한 장이 마련될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그 책도 갈라파고스와 박중서 님이 맡아주시면 캠벨의 애독자로서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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