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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ㅣ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8
박연철 글.그림 / 시공주니어 / 2007년 4월
평점 :
박연철 작가가 쓴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는 근간에 구입한 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다.망태할아버지라는 소재 뿐만 아니라 일러스트 또한 내용을 충분히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역시 충분히 세계적인 상을 탈 만한 훌륭한 작품이다.
내가 어릴적엔 (1960년대 중반 즈음)정말 커다란 망태를 메고 집게로 이것 저것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워 담던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말로 넝마주이라고도 불렀던 것 같다.
지금으로 치면 노숙자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노숙자와 다른 점은 그들은 스스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입고 있던 옷은 누더기에 가까웠다.
꾀죄죄한 모습, 가까이 다가만 와도 역겨운 냄새가 풍겨나던 넝마주이들은, 다리 밑에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추우나 더우나 그곳에서 지내고 하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은 남의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기도 하던 넝마주이들을 사람들은 일반적인 이웃의 범주에 넣어주지 않았다. 망태할아버지의 유래가 어디서 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넝마주이 중에서도 나이든 망태할아버지를 위협의 인물로 뽑은 것은 힘든 세상을 살아 온 할아버지의 인상에서 더 고약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협하는데 망태할아버지를 유용하게 이용하였다.
요즘의 아이들은 망태할아버지의 존재를 제대로 알기나 할까? 요즘의 엄마들도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며 아이들을 위협할까? 막연한 망태할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몰라도 될 망태할아버지의 존재를, 이 책은 자세히 제공하고 있다.
책표지에 길게 뻗어 나온 여러개의 손, 정체불명의 손은 금방이라도 아이를 낚아 채어 갈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망태할아버지의 손이라는 걸 아이들은 금방 안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다 혼을 내 주고, 우는 아이는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는 새장 속에 가둬 버리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는 올빼미로 만들어 버리는 망태 할아버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줄을 세워 착한 아이 표시의 동그라미 도장을 찍어대는 장면은 망태할아버지에 대한 공포감의 절정이다. 망태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일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 많은 아이 가운데 마치 자기도 포함되어 있을 것 같은 불안도 느낄 수 있으리라 보아진다.
아이는 일방적인 엄마의 지시에 불만을 안고 있다. 대들어도 보지만 "망태할아버지한테 잡아가라 한다"는 엄마의 말만 들으면 꼼짝을 못한다. '망태할아버지'는 엄마의 든든한 빽이다.
망태할아버지가 아무리 무서워도 아이의 마음까지 다스리지 못한다. 망태할아버지로 억눌린 분노(?)가 그림자의 형태로 길게 뻗어 나온 그림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책을 보는 독자가 어린이라면 이 장면에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자신과 동일시하며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책속으로 더 깊이 개입하기 시작하는 대목이라고 보아진다.
본 적도 없지만 언제든 엄마의 한 마디면 잡아갈 듯한 망태할아버지의 존재가 이야기 내내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엄마한테 대든 날 밤, 실제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공간에서 망태 할아버지의 존재를 실감나게 체험하게 된다. 달려온 엄마를 안고 아이는 "아까 화내서 미안해'라고 한다. 엄마도 "미안해"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 등에 찍힌 동그라미 도장, 바로 망태할아버지의 도장이 무엇인가를 암시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아이도 엄마도 서로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한다. 무슨 이유일까? 바로 망태할아버지 때문이다.나쁜짓을 하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망태할아버지는 이제까지 아이에게만 위협의 대상이었지만 이 책을 덮는 순간 책을 읽어 주는 어른에게도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아이들은 얻게 된다. 이것이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 인 것 같다. 왜곡된 진실에 대한 이해, 세상은 힘센 어른들의 것 만이 아닌 아이들의 것이기도 한 것을 책은 전하고 있다.
한편, 무엇에 대한 두려움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고 보아진다. 겉으로는 화해를 청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불씨처럼 남아 있다. 역시 문제 해결은 위협과 강요와 명령이 아닌 긴 대화의 방법이 바람직하다.
옛것은 다 추억이 된다.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그 어렵던 시절 모자를 눌러 쓰고 커다란 집게로 딱딱 소리를 내며 망태를 메고 다니던 그들과 실제 함께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요즘 아이들에 비해 행운이라고 여겨진다. 이제 오래된 그들의 기억과 다시 책 속에서 만난 망태할아버지의 모습속에서 또 다른 상상 속 망태할아버지 모습을 만난다. 나의 망태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망태할아버지 보다 특별하다. 그래서 행복하다. 지금의 아이들도 커서 어른이 되어 또 다른 망태할아버지의 모습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