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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방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3
다니자키 준이치로 외 지음, 김효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명의 일본 작가가 집필한 총 9편의 일본 추리소설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
서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적으로 선택해서도 읽을 수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살인의 방]
탐정소설에 빠진 자칭 정신병 유전자를 지녔다는 도련님 소노무라는 친구 다카하시를 꼬드겨
살인의 현장을 같이 범인 몰래 관람하자고 제안한다.
"끔찍한 약이니까 아름다운 거야. 악마는 신과 마찬가지로 아름답다고 하지 않아?" (p.53)
면식이 있는 사람을 살인을 한 것만으로도 모잘라, 죽은 사람을 녹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한다는 약이 등장한다는 게 정말 오싹했다. 근데 그 이상으로 경악했던건 그런 섬뜩한 살인의 광경을 보고난 후에 소노무라가 다카하시에게 털어놓은 살인범 여자에 대한 연정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소노무라는 과연 무사할 수 있을지?...
반전이 밝혀지기 전까지 긴장하며 읽었는데 반전이 아니었다면 다 읽은 이후에도 마음이 많이 찜찜했을 것 같은 소설이다.
[길 위에서]
산책하던 법학사 유가와에게 탐정 이치로가 먼저 접근하여 제목처럼 길 위를 걸으면서 얘기를 주고 받는다. 하하 웃으면서 천연덕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예리하고 빈틈없는 추리로 범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탐정의 넉살스러움이 인상 깊다. 마무리가 담백하면서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도둑과 나]
"무슨 일이 있어도 도둑질만큼은 하지 않을 것 같아. 어쨌든 그건 정말이지 곤란해. 다른 사람은 친구로 삼을 수 있지만 도둑이라면 아무래도 인종이 다른 것 같아서 말이야."(p.138)
어쩌다보니 기숙사에서, 특히 목욕탕 탈의실에서 자주 발생하는 도난사고를 화제 삼아 얘기하게 된 친구들과 주인공 스즈키. 그중 히라다라는 남자가 스즈키가 입었었던 등나무 꽃 무늬 옷을 범죄의 단서로 의심하는 빛을 드러내자 스즈키는 이를 불쾌하게 여기면서 신경전을 벌이는데 결국 나중에 가서 스스로 자백하는 범인의 정체는...?
제대로 속은 감이 없지 않았던 소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개화의 살인]
자신의 사촌 여동생 아키코를 사랑하게 된 일화와 내막, 그간 느낀 심리와 고뇌 등을 드러낸 기이치로 박사(가명)의 유서를 그대로 옮긴 소설.
[의혹]
어느 날 나카무라 겐도라는 50세의 남자가 윤리학을 강의하는 글쓴이에게 찾아와 자신이 겪은 대지진을 계기로 이어진 끔찍한 비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신의 고뇌를 털어놓는 이야기.
[덤불 속]
어떤 살인 사건을 계기로 원님에게 심문을 당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증언을 하는데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마지막까지 언급되지 않는 소설. 막바지에 이를 수록 증언의 내용이 충격적인데 진실이 무엇인지는... 이야기가 뒤로 갈 수록 흥미진진하게 읽었으나 결말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 같아 아쉽다.
*기쿠치 간*
[어떤 항의서]
주인공의 누나 부부를 무참히 살해한 사카시타 쓰루키치는 결국 처형되었지만 죽기 직전 그의 태도와 세간에서 다루는 그의 호평(?)을 보고 화가 난 주인공이 법무부 장관에게 보낸 항의서를 다룬 내용.주인공의 참담하고 억울한 심정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었으나 결국 그에 대한 뚜렷한 조치는 다뤄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
[예심조서]
판사 시노자키가 노교수 하라다를 끈질기게 괴롭혀서 끝내는 원하는 성과(?)를 거두는 내용.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애쓰는 아버지 하라다의 절박함이 인상깊다.
"제게도 자식이 있습니다. 부모로서의 당신의 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는 어떤 무모한 짓도 하죠......" (p.269)
[인조인간]
제목과 시작이 뭔가 있어보여 기대했던 작품인데 그 속에 숨어있는 부조리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는 것 같아 불편하면서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사이다같이 속시원한(?) 마지막과 약간이라도 반전이 있기를 기대해서 그런지 결말이 좀 실망스러웠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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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는 범죄자와 탐정의 심리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것보다는 심리전을 다루는 요소가 많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꺼림칙한 것 없이 평화롭고(?) 깔끔하게 끝나는
[길 위에서]와 [예심조서]를 제일 만족스럽게 읽었다.
끝 마무리가 아쉬운 작품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이 책에 실린 추리소설들은 어렵지 않고 매끄럽게 읽힌다는 큰 장점이 있다. 작품마다 각자 흡입력이 있어 나같이 추리소설에 많이 익숙치않은 사람에게도 읽어 나가는데에 무리가 없어 좋았다.
(※이 글은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