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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 시간을 초월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고주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그간 일본 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내게 일본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는 생소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애틋하게 다가오는 사랑이라는 명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시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다. 애틋한 설레임과 함께 신비함까지 가져다주는 사랑이야기가 봄바람을 타고 내 가슴에 찾아온다.
여리고 감수성 많은 어린 소녀들은 전쟁으로 인한 긴장과 암흑의 시대에 살았다. 그런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도 주인공 마쓰미는 30년에 단 한 번, 밤하늘에 쏟아지는 유성우를 가슴에 새긴 채 똑똑하고 바른 소녀로 살아간다. 고베로 이사 온 후 아빠 회사 사장 딸인 야치요와 친구가 되고 어느 날 그 집에 놀러가게 된다. 카드놀이를 하다가 만나게 된 야치요이 사촌인 슈이치를 만나게 된 후 마쓰미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전에 없이 심장이 두근거리고 박동 수도 빨라지고 얼굴은 붉어지는 것 이른바 사랑에 빠진 것이다.
수줍은 어린 소녀에게 찾아온 어느 날의 변화는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첫사랑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잊혀 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가슴 시릴 만큼 설레고 먼 훗날이 지나서도 추억하게 되는 사랑. 이들의 풋풋한 사랑을 방해하는 전쟁의 소용돌이는 깊어간다. 각 지역의 피난물결이 이어지고 결핵에 걸린 아버지와 요양을 가게 되면서 슈이치와 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없는 기약만 한 채로 작별을 하게 된다.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헤어짐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들의 운명이 톱니바퀴처럼 어긋나고 만 것이다. 시대적인 상황과 앞으로의 미래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나날들,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운명은 정말 하늘에서 정해준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 앞에 놓이게 되고 때때로 다가오는 알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겪게 된다. 그리고 운명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픈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지라도 우리의 추억 속에서 누군가와의 시간을 떠올려 볼 수 있는 한 우리는 계속적인 만남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기타무라 가오루는 남성작가이지만 특유의 섬세함으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해낸다. 이 책을 읽고서야‘시간과 사람’3부작으로 구성된 책임을 알게 되었다.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간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과의 연계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도 언젠가는 또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눈에 보이는 만남이 아닐지라도 추억과 기억 그리고 그리움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지 않을까.
운명이 정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저마다의 마음에 따라 다른 것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새로은 소재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나와 이생에서 만나게 된 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조명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