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2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쩐지 느껴지는 작가의 이미지는 ; 뒹굴고, 먼지를 털고, 신나게 혈안이 되다, 허전하고 씁쓸하다. 자신을 찾아오는 젊은 여성들, 하룻밤들, 찾아온 여성들끼리의 싸움, 작가와 어떤 남자들과의 싸움, 혹은 비굴함, 자신만만하다가도 결국 비루하게 살다 죽을 거라는 잠시의 자각들. 시의 구절들은 통속적인 말들에서 삶에 대한 생각으로 순식간에 나를 인도했다.

 

 말들이 아주 솔직하게 느껴진다. 욕설들과 피와 오줌, 정액, 연약한 신체, 여성혐오적인 표현들, 노려봄, 내리까는 눈, 흐믓한 표정과 무기력함이 만드는 몸의 멈춤. 소재와 행동적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선명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선명함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려나. 


 그러나 솔직함이라는 말은 진정성이라는 말만큼 기만적이지 않나. 이런 일관된 이미지들이 말하는 바는, 이 시가 보여주는 단면들의 이면들을 살펴보라는 게 아닐지. 아무튼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는 냄세나는 즐거운 시들로 가득하다.


이제 친구 녀석은 늙어서

흔들의자에 앉아있겠네

의치를 끼고

버터우유를 들고......

 

지금 나는 술에 취해

침대에서 같이 누운

열아홉 살짜리 소녀팬을 따먹고 있는데.

 

그런데 최악은 뭐냐면

(차고 지붕에서 뛰어내렸을 때처럼)

유진이 또 이겼다는거야.

그놈은 나를 생각조차

안 할 테니까.“


* 유진이라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어렸을 때 서로 라이벌처럼 지내며, 놀기도 많이 놀았던 모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1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글을 쓰고싶다고 생각한 후, 여러 가지 생각 위를 떠다니는 요즘이다. 좋은 글의 기준. 아무튼 어떤 종류의 ‘(마음의)동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상을 잊고 그 글들을 주파할 정도로 재밌다면 좋은 글이라 말할 수 있다. 글이 엄청나게 길어서 읽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거나, 글은 진짜 재미없었는데 한 문장이 마음에 남아 삶의 순간들에서 그 문장이 함께하도록 만든다면, 이 역시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의미를 가진 글들 역시 좋은 글들이라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에겐 좋은 글의 유일한 의미이다. 다만 나는 사회적 의미라는 것을 생각할 때면 항상 조심하곤 한다. 나는 문학이 개인의 편이길 바란다. 소위 문, , 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개인의 편이 되길 바란다. 이 분야들은 언제나 이라는 매개를 가지며, 글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행위이지 않나. 개인이, 혹은 개인들이 쓰는 글에 개인을 소외시키는 글이 쓰인다면 위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계가 쓰는 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철의 시대는 재미없다. 적어도 나는 이 글들을, 일상을 잊으며 단박에 주파할 수는 없었다. 편지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글은 조금 두서없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자기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기술한다. 사실 편지라기보단, 자동기술기계가 적어낸 일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의식을, 끝도 없이, 흐르는 대로 읽는다는 건 꽤 피곤한 일일 수 있다.(물론 어떤 종류의 패턴이 분명히 있긴할 것이다.)


왜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 설명하려면, 아마도 내용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귀찮은 일이다. 귀찮지만 정리해 놓으면 나한테 좋겠지.


 편지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한 할머니, 커런 부인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어느 날 커런 부인은 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집 앞에서 개 한 마리와 허름한 판자 안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 퍼케일을 발견한다. 딸은 일찌감치 거의 내전중인 남아공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 것 같다. 그나마 주변의 사람이라 하면 가정부인 플로렌스(아마 원주민일 것이다) 정도가 되겠다. 커런 부인은 끊임없는 삶의 고통으로 인해 몸부림친다. 결정적으로 플로렌스 부인의 아들의 친구가 백인 경찰들에게 학살당하는 일을 목격한다. 결국 커런 부인은 죽는다. 그러나 퍼케일의 품 안에서 죽는다. 커런 부인은 죽기 전까지 퍼케일이 자신의 옆에 남아주길 바랐으며, 그 바람은 이뤄진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들을 적은 이 글을 퍼케일이 자신의 딸에게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글은 일종의 유서이자 일기, 편지이다.

 

 다소 경박한 시선으로 보자. 이 이야기는 한 백인 할머니가 노숙자 흑인 아저씨를 취한 이야기 아닌가? 또 사회적 문제보단 개인의 문제에 집중한 이야기이지 않나? 그렇다면 그게 나쁜건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철의시대가 갖는 미덕과 연결되는 점들이다. 백인 할머니가 백인 할아버지와 연결되는 구조라면 조화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이 조화를 말함직한 이유는, 아파르트헤이트, 말 그대로 분리정책의 시대를 이 책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을 통해서가 아닌 조화. 여기에 노숙자와 기득권이라는 사회적 계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든 녹여야 하는 게 조화의 목적이기도 하니까.

 사회보다 개인의 문제에 집중한 점도 이 책의 생각해봄직한 특징이겠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소설들은 으레 선동적이다. ‘불편해 하라’, ‘움직여라’, ‘너 자신의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라.’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미덕인 공간은 사회문제가 다뤄지는 토론공간밖에 없을 것이다. 실생활에서는 개인으로서 남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종종 자극적인 언설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대게는, 개인의 맥락이 없어지길 바라며 손가락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찌르려는 행위.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문학, 사학, 철학이 개인의 편이길 바란다. 누군가의 입장이 아닐 수는 없으며, 누군가의 입장이 아닐 수 없다면, 누군가의 입장을 충실히 변호해주길 바란다. 철의 시대는 그 거대한 재미없음에도 불구하고, 읽을만한 가치를 충분히 건질 수 있는 글이다. 커런 부인은 말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신비화함으로써 전쟁을 부추긴다. 전쟁은 언제나 늙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보내는 행동들이었다.” 이 소설은 차별의 시대에 남아공을 배경으로, 백인으로서, 그리고 할머니로서, 힘을 가진, 또 힘이 없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지음, 박제이 옮김, 손열음 감수 / 책세상 / 2020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6월 2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20년 10월 29일에 저장

불교의 대의
스즈키 다이세츠 지음, 김용환.김현희 옮김 / 정우서적 / 2017년 9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6월 2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8년 05월 26일에 저장

시를 쓴다는 것- 일상과 우주와 더불어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8년 05월 26일에 저장
구판절판
마음을 쏘다, 활-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6월 2일 (월)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8년 05월 26일에 저장



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