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네 서울 나들이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18
고승현 글, 윤정주 그림, 김정인 감수 / 책읽는곰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윤정주 작가의 그림이 돋보이는 <연이네 서울 나들이>는 연이와 철이, 덕이 삼총사가 서양문물이 들어오던 시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서울의 모습을 둘러보며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삼총사의 여행은 홍수골에서 시작합니다. 앵두나 복숭아처럼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다하여 붙여진 홍수골은 지금의 종로 창신동을 말합니다. 삼총사가 움직이는 계절은 바야흐로 봄입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유혹하며 멋진 여행을 선사합니다.

삼총사가 흥인문 안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본 광경은 바로 전차입니다. 삼총사는 전차를 타는 것만도 신기한데 난생처음 푸른 눈과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서양 아이를 만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많이 몰려 운종가라 붙은 거리에 있는 만물상에서는 천리경을 보고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하기도 합니다.

 

삼총사가 그냥 새로운 문물이 넘쳐나는 서울구경을 한 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전부라면 책은 자못 심심했겠지요.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랍니다. 아무리 훌륭한 공간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나지 않으면 조금은 허전한 이야기가 되고 말겠지요.

삼총사는 전차에서 서양아이를 만나고 그 아이가 몹시 곤경에 처해있음을 알게 됩니다. 언어가 통할 리 없는 아이들이지만, 만국공통어 몸짓으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요. 아이들이 통성명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는 아주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부분입니다. 서양아이의 이름이 신디인데 연이는 그 이름을 이해하지 못해 뭘 잘못 먹었는지 자꾸 시다고 한다며 투덜거리지요. 결국 삼총사는 어린이 특유의 순발력으로 양코배기들이 많이 산다는 정동으로 가서는 신디와 엄마를 만나게 해줍니다.

연이는 덕분에 난생처음 서양식 산도위치와 수텍기라는 것도 먹어봅니다. 포크와 나이프를 처음 사용하는 연이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런 음식을 먹었으니 연이는 서양음식을 직접 접한 초기 서양문물 수혜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총사가 만난 서양아이부분은 많은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시기에 서양인이 살았다는 사실은 당연명제처럼 생각하면서도 서양아이들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입니다.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요? 여하튼 이 책을 읽다보니 근대화시기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서양 어린이의 입장이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이 책의 글쓴이 고승현은 <책읽는 곰>출판사의 온고지신 시리즈로 나온 <천하무적 조선 소방관>에서 그림 작가 윤정주와 이미 짝을 맞추어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글작가과 그림작가의 조합이 잘 어우러지니 또 한편의 멋진 책이 되었습니다.

서울이 우리나라 수도가 된 지는 어언 600년도 넘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만큼 서울은 변화무쌍합니다. 건축물과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생동감이 살아 숨 쉬는 서울을 그려보는 것은 묘한 설렘까지 줍니다. 서울 중심부를 지도처럼 그려보며 책 속에 등장하는 보신각이며 광화문, 대안문에 이르다보면 어느덧 경복궁 바로 옆 송현동에 생각이 머뭅니다. 어느 재벌이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는 북촌 명소인 송현동에 호텔을 짓는다는 것이지요. 경복궁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움은 전통의 올바른 계승 위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이라는 명제가 서울의 건축물과 함께 과제로 떠오릅니다.

이 책에는 색다른 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서양 아이로 등장하는 신디의 영어 표현입니다. 신디는 서양 아이니 영어로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 좀 색다른 느낌이지 싶습니다.

 

신디는 연이와 헤어지며 연이의 볼에 입을 맞춥니다. 연이의 뺨은 발그레 물들지요. 낯선 모습의 아이들이 처음 만나 서로 도와주고 의지하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은 100년 전 서울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관계 맺기의 따뜻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댕기머리 아이나 까까머리 아이, 나아가 노란머리 아이까지 한 공간 안에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하다보면 그들은 모두 친구가 될 수 있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