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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날아오르도록 햇살어린이문학 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햇살과나무꾼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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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에 올라탄 금발의 소녀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질주한다. 호랑이는 어둡고 깊은 숲속으로 맹렬히 달린다.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온몸을 활처럼 솟구쳐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라면 소녀는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을 것만 같다.

 

케이트 디카밀로의 어린이를 위한 책 <슬픔이 날아오르도록>의 표지 그림은 이토록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호랑이 모습만 기억하는 우리에게 이 그림은 원초적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 표지 그림은 이렇게나 강렬한데 제목은 상대적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명사나 동사로 끝나는 대신 날아오도록이라는 연결 어미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조용히 그려본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뒤에 어떤 글을 붙이면 좋을지.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뛰어간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달린다,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실컷 운다, 이야기한다, 잔다, 그리워한다 등등. 그러다 책의 그림과 어울리는 적절한 뒷문장은 역시나 달린다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그림은 책 제목을 완결짓는 그림이라 봐야겠다.

 

책의 주인공은 로브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빠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플로리다의 모텔로 이사한 어느 날 아침, 로브는 숲속에서 우리에 갇힌 호랑이를 만난다. 로브는 호랑이에게 연민을 느낀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로브는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자 슬픔을 마음속에 눌러만 놓고 지낸다. 그런 로브에게 우리에 갇힌 호랑이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로브가 호랑이를 처음 만난 날,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시스틴을 만난다. 로브와 시스틴은 공통점이 많다. 낯선 곳으로 전학 왔고, 아이들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따돌림을 당하고 있고, 시스틴의 부모는 이혼해서, 엄마가 없는 로브와 처지와 비슷하다.

 

표면적으로 둘의 상황은 비슷해 보이지만 로브와 시스틴이 문제를 해결하는 양상은 매우 다르다. 로브는 자신을 여행 가방이라 생각하며 모든 감정을 그 가방 안에 꾹꾹 눌러 담는다. 로브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고 지독하리만치 감정을 숨기고 참아낸다. 하여 로브의 두 다리는 두드러기가 점령한다. 로브의 보호받지 못하는 상처는 이렇게 밖으로 돌출되어 독처럼 퍼져간다. 반면 시스틴은 온 세상 화를 다 품고 있는 것처럼 화가 가득 차서 번개처럼 사납게 쏘아댄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하며 몸부림친다. 뜻밖에 로브는 시스틴이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하자 싸움에 끼어든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시스틴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로브는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는 조건으로 모텔 주인인 비첨 씨에게 우리 열쇠를 받게 된다. 로브는 이제 꿈틀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호랑이를 둘러싸고 시스틴과 충돌하며 의견 대립도 보이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은 로브나 시스틴, 호랑이 모두 똑같다. 이 과정에서 로브는 아빠와 막혀있던 감정의 골을 무너뜨리고 극적으로 화해한다.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모두 어른스럽지는 않다. 폭력적 상황을 그저 방관하는 학교버스 운전자가 그렇고 돈만 아는 비첨 씨도 그렇다. 로브의 아빠는 아내를 먼저 보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다. 어쩌면 로브의 아픔은 상처를 직면하지 못하는 아빠의 두려움으로 인해 더 커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그럼에도 로브를 사랑하고 책임지려 하는 존재다. 반면 로브와 시스틴을 어루만져주는 어른의 모습도 있다. 모텔에서 일하는 윌리메이 아줌마는 로브와 시스틴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네 다리에는 네가 꾹꾹 짓눌러 놓은 슬픔이 몽땅 모여 있어. 원래 슬픔은 가슴에 있어야 하는데, 네가 짓눌러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잖아. 그 슬픔이 날아오르도록 해 줘야 돼.”(48)

 

로브의 마음을 읽어주며 시스틴의 독설 속에 있는 외로움과 문제점을 이해해주는 예언자의 면모를 가진 어른이다. 책을 읽는 어른이라면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해야 할지 되짚어보게 한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상처받고 자라다가 플로리다로 이사하면서 도서관에서 책과 친구들을 만나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플로리다는 작가가 밝고 건강하게 성장했던 곳을 그리고 있으니 작가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책의 주인공 로브와 시스틴이 서로 마음을 여는 매개는 재미나게도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이다. 그렇다. 사소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무엇이 공통의 관심사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대와 물리적인 거리를 단박에 해소할 수 있다. 더욱이 로브는 나무를 깎아 작품을 만드는 취미가 있고, 시스틴을 그런 로브를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라고 칭해줄 수 있으니 이런 게 인연이 아니면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 우리가 아는 또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존재하는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결국 우리 삶을 향기롭게 하고,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라는 생각에 마음 따뜻해진다.

 

이 책은 상처, 우정, 친구,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순수하게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시스틴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상상을 하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로브와 손을 꼭 잡고 소소한 일상 속 행복을 느끼는 존재로 성장해가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성장하는 존재다.

"너는 너 스스로 구해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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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업
셸 실버스타인 지음, 김목인 옮김 / 지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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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 실버스틴인의 작품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어린이가 읽어도 좋지만 삶을 어느정도 살아본 이들이 읽을 때 더 깊이 감동할 수 밖에 없는 책이다. 그 진한 감동을 다시 느끼기 위해 새로 간행되는 폴링 업 펀딩을 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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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 - 1939 뉴베리상 수상작 햇살어린이문학 2
엘리자베스 엔라이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햇살과나무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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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의 원제는 <Thimble Summer>, 그러니까 골무 여름이다. 골무 여름이라니. 쉽사리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우리 정서에 맞게 <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로 제목을 붙인 것은 번역가의 멋들어진 작법이다. 오래전 비룡소에서 나왔던 작품을 전문 번역 집단인 햇살과나무꾼이 이젠 출판사 이름을 당당히 걸고 새로 펴냈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엔라이트는 풍자 만화가인 아버지와 어린이책 삽화가인 어머니, 유명한 건축가인 외삼촌 등 예술가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삽화가가 되어 책에 그림을 그리다가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온전히 그리고 싶은 열망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어려웠던 대공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위스콘신 시골을 공간적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소품 중에서 골무를 제목으로 올렸을까? 특별한 주석이나 해설은 없기에 그저 상상해볼 뿐이다. 우리나라는 헝겊 골무가 대부분인데 유럽의 골무는 금속, 도자기, 나무가 많다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 가넷이 농장 근처 강가에서 주운 골무가 바로 은색 골무다. 가넷은 근사한 물건인 은색 골무가 반드시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 가넷이 주운 귀한 물건이 반지가 아니라 골무인 것은, 바로 행운의 상징물인 때문이다. 손을 치장하는 장신구가 반지라면 골무는 현실의 삶을 채워가는 단단한 바느질 도구이다. 대공황과 농사를 짓는 가족의 미래를 위협하던 기나긴 가뭄이, 가넷이 골무를 주운 바로 그날 저녁 폭풍우가 시작되어 해소된다. 농작물의 수확이 한해 가족의 먹거리를 결정하는 농가에서, 적절한 비와 기후야말로 자연이 주는 선물인 셈이다. 여성이 한 가정에서 담당하는 가사와 육아에 있어 바느질은 필수노동이었을 테고, 이 가사노동에 골무는 꼭 필요한 도구였을 터다. 그 중요한 노동의 도구에서 행운은 시작된다. 그러니 행운은 결국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가넷이 골무를 발견한 날 비가 내리고, 정부에서 돈을 받아 너무 낡아 무너질 것 같았던 헛간을 새로 지을 수 있었다. 헛간을 새로 지을 석회를 굽는 날엔 에릭이라는 떠돌이 소년을 한 식구처럼 맞이하는데 이 모든 것이 골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넷이 애지중지 키운 새끼돼지는 박람회에서 일등상을 받아 파란색 리본을 획득한다. 이 책에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곳곳에 버무려져 있다. 샌드위치와 사과파이뿐 아니라 토마토, 오이, 자두 콩 등을 갈무리해서 병조림하는 일상이며 탈곡기로 귀리를 탈곡하고, 석회를 굽는 일상 등, 온갖 필요한 식품이며 물품을 직접 만드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아름답고 신기하게 펼쳐진다.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주문할 수 있는 인스턴트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 조금 느리지만 자연의 이치에 맞게 순환하며 살아가던 시대의 아름다운 일상을 엿볼 수 있다.

 

1930년대, 미국 중북부를 배경으로 한 오래된 이 책이 지금 새롭게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 어려움이 극심하던 시대, 아홉 살 가넷이 챙겨온 청구서를 가넷의 어머니는 저녁 식사 이후 아버지에게 보여주기로 하고 숨겨둔다. 사소하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가 책의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한다. 가넷이 오빠에게 화가 나 몰래 집을 나갔다 온 사실을 안 동네 아저씨는, 가넷을 혼내는 대신 일에 바쁜 엄마 아빠에게 알리지 말라는 현명한 조언을 한다. 떠돌이 소년 에릭을 맞이하는 가족의 넉넉한 마음도 돌이켜볼 만하다. 모두 빠듯한 살림에도 묵묵히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을 우리가 회복할 수 있을까. 가넷이 동네 언니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보다 도서관에 갇힌 에피소드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에릭과 가넷, 가넷의 오빠 제이는 커서 동업자가 되어 농장을 멋지게 가꾸자고 약속한다. 가넷은 골무를 꺼내며 에릭에게 말한다.

이건 마법 골무거든. 이 골무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 이걸 주운 뒤로 모든 일이 일어났어. 바로 그날 밤 비가 내려 가뭄이 끝났잖아! 내가 골무를 발견한 뒤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하나같이 좋은 일뿐이었어! 난 올해 여름을 언제까지나 골무 여름으로 기억할 거야.”

 

여름이 가고 훌쩍 가을이 다가온 요즘, 지나간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가넷의 골무가 손가락을 보호하는 데서 나아가 가족의 한 여름을 희망으로 채워주었다면 우리의 여름 역시 보이지 않는 어떤 희망으로 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 책의 빼놓으면 서운할 미덕 하나. 문장의 재미난 표현과 자연을 묘사하는 아름다움이다.

 

씽씽 불어오는 바람에 가넷의 갈래 머리가 뒤쪽으로 쫙 뻗치고 시트로넬라의 앞머리가 울타리처럼 곤두섰다. 코가 바람에 밀려 얼굴에 납작 눌러 붙는 것 같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바람에 휙휙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78)”

 

, 이렇게 좋은 날씨라니! 가넷은 햇살 속으로 한 팔을 들어 올렸다. 팔에 난 솜털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오므린 손가락은 빛이라도 담고 있는 양 호박 보석 같은 색을 띠었다.”(136)

 

가넷은 뱃속에서 회전 폭죽이 불꽃을 뿜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138)


이런 문장들은 생생하고 재미있다. 딱 어울리는 비유법은 책 속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불러들이고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독서를 하는 이유다. 읽으면서 그냥 아름답고 따뜻한 세계로 여행하는 것, 이것이 책을 읽는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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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7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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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골무가 가져온 여름 이야기 - 1939 뉴베리상 수상작 햇살어린이문학 2
엘리자베스 엔라이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햇살과나무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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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신비로운 자연을 느끼면서 야영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른이나 아이 모두 이 책을 읽고 세상의 신비를 느껴볼 수 있겠지요. 여름이 가는 길목에서, 뜨거운 여름을 그리며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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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20 세트 - 전20권 - 박경리 대하소설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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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판을 읽고는 부족해서 늘 읽어야 할 목록으로 손꼽았던 책이라 북펀딩으로 구매했습니다. 올 여름 이 책을 읽을 생각으로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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