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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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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제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고요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밥을 먹는 시간과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런 고요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 (p 55)"
수현이 고요를 보고 있을 때 우연은 누굴 보고 있었을까. 그때의 정후는 무얼 하고 있었으며 지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돌고 돌아서 그때 고요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같은 상황에 있어도 우린 전부 다른 눈빛과 마음가짐으로 그 상황 속에 존재한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나를 '내가 원하는 나'로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나로 기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찰나의 순간 모두 각자의 방향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무수히 많은 나로 기억된다. 그게 진짜 내 모습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주인공인 수현은 자신이 너무나도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심심하고, 시시하고, 재미없다고. 그래서인지 수현이 묘사하는 주변 친구들의 모습은 더욱 특별해 보이곤 한다. 하지만 수현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조금 다른 듯하다. 오히려 수현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겐 없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면 저절로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갖고 싶으니까 괜히 빛나 보인다. <고요한 우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다른 누구에겐 없는 오직 그 인물만이 가진 작고 여린 보석 같았다.
타인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으로 볼 수도 있다. 네가 궁금해서 너를 더 알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싫어하는 것, 언제 슬프고 언제 가장 행복한지까지. 그런데 고요는 자신을 향한 그 궁금증들이 달갑지 않다. 한번 마음을 주면 기대하게 되니까. 다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 받고 싶어지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받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받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멀어질 일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고요에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사실 수현과 정후, 우연, 지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것. 미안함과 고마움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
우리가 명심해야 할 약속이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 고작 이것이 너만의 방식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p 190)"
수현은 꿋꿋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다가간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원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향하기 때문에. 나는 진심이란 말이 위와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누굴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음이 그곳을 가리켰으니까.
내용적인 부분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건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이다. SNS의 익명성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익명성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독자가 직접 상상해 보면서 다시금 양면성을 깨닫게 하는 효과도 좋았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누구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게 SNS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 느껴 보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게 가장 안심할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성격이 성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 왜 자꾸 중요하게 작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넓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잠시 나의 방식은 무엇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보면 자꾸만 갖고 싶어지는 것처럼 좋거나 멋져 보이는 남의 행동을 볼 때면 닮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호해졌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처럼 나도 잔잔하게 흘러가고 싶다.
고요하게, 가끔 찾아오는 우연을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