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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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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별한 점이라 하면, 여섯 명의 작가들이 모여 같은 주제로 SF 소설을 한 편씩 완성해냈다는 것이다. SF 보다의 첫 번째 주제는 '얼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얼음 말고 다른 세계의 얼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일반적인 한국문학을 더 많이 읽곤 하는데 이번 가제본을 접하며 SF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여섯 개의 단편은 나를 이쪽으로 잡아당겼다가 금세 다른 세계에 옮겨 놓기를 반복했다. 아주 작은 웅덩이에 발을 가져다댔는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나를 끌어당긴 듯한 느낌. 이런 게 SF의 매력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주제가 정해져있다 보니 작가들의 해석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얼음'이라는 어쩌면 정말 일상적일지도 모르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세계를 펼쳐놓을 수 있다니. 끝없는 상상력을 본받고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다음 주제는 무엇이 될지, 그때는 어떤 작가들이 모이게 될지, 그 작가들은 또 어떤 세계를 보여줄지. 계속해서 다음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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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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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게 우리는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내가 사는 이곳이 안전할 거라는 믿음.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 강한 믿음은 난민을 시야에서 지우고, 완전히 유령으로 만들어 버린다.

버샤, 진짜 이름은 아이샤인 주인공은 가족들과 함께 공항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들 어렸을 때 아무렇지 않게 백화점이나 공항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높은 천장과 반짝거리는 물건들, 화장실 출입이 자유롭고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이 많은 곳이니까. 하지만 진짜 그런 공간에 거주해야 한다면, 우리는 상상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주인공과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나름 합리화를 하며 공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이 나라만은 받아 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공항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


 아이샤가 버샤가 되기까지 있었던 일이나 종교와 더불어 그들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아이샤와 J의 에피소드도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작품 초반 곳곳에 사실적으로 쓰여진 난민 생활에 관한 이야기였다.


"남들 눈에 안 띄어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어."(10 p)

"이미 우린 숨죽이고 사는 일에 적응돼 있다. 말은 속삭임으로 바뀌었고 걸음도 도둑 걸음이 몸에 배었다."(11 p)

"우리는 유령이나 다름없는 신세였다."(16 p)

"이곳에서 우리는 '난민 인정'을 간절히 바라는 난민이 되었다."(28 p)

"침묵은 적어도 절반의 평화는 보장해 준다."(29 p)


 나는 난민에 관해 스치듯 이야기는 들은 적 있지만 자세하겐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욱 가까이에 있을지 모르는데도 크게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계기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가장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분명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결코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듯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조금 더 나은 방법과 함께 살아가야 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페이지를 붙들어야만 한다. 지구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곳이 아닌가.


 분명 어딘가에는 이곳에선 나를 받아 줄지도 모른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밤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 조금이라도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줘야 하지 않을까? 믿음이 마술을 부리는 법이라고 했던 버샤이자 아이샤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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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우연 -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3
김수빈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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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제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고요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밥을 먹는 시간과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그런 고요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 (p 55)"

수현이 고요를 보고 있을 때 우연은 누굴 보고 있었을까. 그때의 정후는 무얼 하고 있었으며 지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돌고 돌아서 그때 고요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같은 상황에 있어도 우린 전부 다른 눈빛과 마음가짐으로 그 상황 속에 존재한다.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나를 '내가 원하는 나'로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나로 기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찰나의 순간 모두 각자의 방향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무수히 많은 나로 기억된다. 그게 진짜 내 모습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주인공인 수현은 자신이 너무나도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심심하고, 시시하고, 재미없다고. 그래서인지 수현이 묘사하는 주변 친구들의 모습은 더욱 특별해 보이곤 한다. 하지만 수현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조금 다른 듯하다. 오히려 수현을 더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겐 없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보면 저절로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갖고 싶으니까 괜히 빛나 보인다. <고요한 우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다른 누구에겐 없는 오직 그 인물만이 가진 작고 여린 보석 같았다.

타인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으로 볼 수도 있다. 네가 궁금해서 너를 더 알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싫어하는 것, 언제 슬프고 언제 가장 행복한지까지. 그런데 고요는 자신을 향한 그 궁금증들이 달갑지 않다. 한번 마음을 주면 기대하게 되니까. 다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 받고 싶어지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받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받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멀어질 일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고요에게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사실 수현과 정후, 우연, 지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것. 미안함과 고마움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

우리가 명심해야 할 약속이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 고작 이것이 너만의 방식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p 190)"

수현은 꿋꿋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다가간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원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향하기 때문에. 나는 진심이란 말이 위와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누굴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음이 그곳을 가리켰으니까.

내용적인 부분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건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건이다. SNS의 익명성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익명성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독자가 직접 상상해 보면서 다시금 양면성을 깨닫게 하는 효과도 좋았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누구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게 SNS이기도 하다는 걸 새삼 느껴 보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게 가장 안심할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성격이 성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 왜 자꾸 중요하게 작용되는지에 대해서도 넓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잠시 나의 방식은 무엇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보면 자꾸만 갖고 싶어지는 것처럼 좋거나 멋져 보이는 남의 행동을 볼 때면 닮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호해졌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처럼 나도 잔잔하게 흘러가고 싶다.

고요하게, 가끔 찾아오는 우연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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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보름달문고 89
어윤정 지음, 해마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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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공공장소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곳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이상하게 편안하고 친밀한 느낌이 든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필요한 책이 있어서 도서관에 가야 했다. 내가 사는 곳에는 대형 서점이 없어서 당일에 읽으려면 도서관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한참 지나서 공부하러 갔을 때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으러 갔을 때도 문은 닫혀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에게 도서관이 얼마나 필요한 공간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도서관이 아닌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라는 책 속 문장처럼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도서관을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다. 요새 도서관이 없어질 거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건 어떤 사람들의 갈 곳을 없애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마음껏 드나들던 때와 갑자기 발걸음을 끊어버렸던 때. 더욱 발전하게 될 도서관. 내 주변 도서관에 리보와 앤 같은 친구가 있다면 개관 시간에 맞춰 매일매일 도서관에 출석했을 것이라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팬데믹과 도서관 말고도 한편으로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누구나 혼자가 되는 상황을 겪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 찾아와 줄 또 다른 누군가가 존재할 거라는 희망, 꿈, 기도.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일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는 지금 얼굴을 직접 마주보는 게 너무 어색해져버렸다. 마치 유리창을 사이에 둔 리보와 도현이처럼.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돌아가 보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직접 얼굴을 마주 대던 때로. 서로가 혼자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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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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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나는 계속해서 판타지아와 선우, 그리고 원지를, 나아가 진짜로 사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사실 나는 동화 곳곳에 묘사된 미래 세계를 보며 살짝 무서움을 느꼈다. 이러다 정말 모든 걸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한편으론 지금 내가 쓰는 물건들과 유사한 지점이 꽤 많이 보여서 동화 속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선우가 판타지아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범호의 괴롭힘 때문이다. 범호는 선우네 집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걸 알고 일부러 접근한 뒤 지속적으로 돈을 빼앗는다. 생각해 보니까 범호도 열세 살이다. 동화 속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어린아이들이 비겁한 행동을 하는 걸 볼 때면 더 나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던 부분이었다.

최근에 나는 동물의 숲이란 게임을 하면서 차라리 동물의 숲에 사는 주민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마치 판타지아에서 사는 원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사는 이 세계처럼 비가 내리지도 않고,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도 없고, 예상하지 못한 일에 놀랄 수도 없다. (동물의 숲이나 판타지아에도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다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상 현실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종종 드는 위와 같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냥 동물의 숲에서 평생 정원을 가꾸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는 것이라고 믿으면 그만인 것일까? 마지막 레벨 업은 계속해서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운전대를 놓고 가만히 앉아 있고만 싶었던 적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잡아 보고 싶어졌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운이 좋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든 불안은 곧 설렘이기 때문에, 나는 불안함 대신 설렘으로 마음을 바꾼 뒤 나의 힘으로 운전대를 잡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동화이지만 연령대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SF를 좋아하는 사람, 동화를 좋아하는 사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아저씨. 아저씨가 운전대를 손으로 직접 잡는 이유는, 무언가를 손수 움직여 보고 싶어서잖아요. 무엇이든 자기 힘으로 시도해 볼 수 있어서잖아요. 원지도 그래요. 원지는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자기 손으로 잡고 싶은 거예요. 원지는 자기가 선택한 모험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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