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세계문학의 숲 47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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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식 속에서 다투는 두 개의 본성 중 어느 하나가 나 자신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오로지 내가 근본적으로 그 둘 다이기 때문이야. -p.91

약물은 악하지도 신성하지도 않지. 그 약은 그저 내 기질의 감옥문을 흔든 것뿐이고, 그 바람에 갇혀 있던 것들이 필립피의 포로들처럼 뛰쳐나왔을 뿐이야. 그 순간 내 덕성은 잠들어 있었고, 야망에 불타 눈을 부릅뜨고 있던 악이 신속하게 기회를 꿰찬 거지. -p.95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의 스스로가 마음에 들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세상과 사람과 관계를 의식하며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나.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나. 우리는 무의식의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나 행동으로 종종 후회하며 고뇌한다. 때때로 의식적이지 않은 상태만이 나의 본질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며, 그런 나를 누군가가 기꺼이 받아들여주길 원하기도 한다. 하이드가 악에 한없이 가까운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묘사된 것은, 정제되지 않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길 원하는 것 역시 감정의 폭력과 다름아님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이드를 감추기 위해 불안에 떨다가 결국 지킬의 존엄을 지키고자 독약을 삼키는 그를 그려본다. '관계안에서 노출하는 나' 역시 나의 욕망에서 기인한 것임을 의식하며, 나의 욕망은 어떤 모습을 추구하는지 그 너머의 근원 또한 들여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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