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양장) IVP 모던 클래식스 3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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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가난에 대한 문제들, 그것에 기초해 교회의 교회됨이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가지고 그들과 함께하는 진정한 샬롬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고민이

마음에 어렵도록 자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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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민과 시민사회 - 사사로운 개인에서 공공의 시민으로
박영신.이승훈 지음 / 북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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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개인에서 공공의사사로운 개인에서 공공의 시민으로 변화한 한국의 시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제공하는 책으로, 한국 시민 사회를 깊이 있게 분석하여 탐구한 내용을 크게 3부로 나눠 담아냈다. 또한 기독교의 맥락에서 `시민`의 개념을 찾은 것 또한 흥미로운 탐구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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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지식인마을 32
하상복 지음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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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에 대해서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다니...
but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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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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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는 나치시대 때 그 영향을 벤야민 보다 더 많이 받아서 인가 대중문화에

대한 것에 많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온 이상, 우리의 가치, 노동의 댓가를 전부 동일한 돈으로

취급하는 이 자본주의에서 대중문화는 더 이상 문화라는 존재를 잊게 만들어 버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이라고 지칭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산업으로 인해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 해낸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새로운 것인양 포장하고 재생산 될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그것을 새로운 것

인양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고 거기에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결국 아도르노 이론에 따르면 예술문화는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역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집에서 학생들이 티비를 보는 것에 비유해서 티비는 바보상자라고 한다.

해외 톱스타 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대중매체를 금하게 하는 것 또한 그 이유일까?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중매체 속에 살고 있는 한, 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동일성에 있어야 되고, 우리는 다 교체 가능한 복제품 에 불과해야 한다.

아도르노 또한 심심찮게 대중매체를 많이 즐겼을 것이다. 그럼 결국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아도르노는 또한 대중문화는 단순히 대중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문화를 만드는 거대한 독점 기업의 손에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거대 영화 극장 CGV, ,메가박스, 롯데시내마 3대기업이 거의 대대분의 스크린을 점유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영화임에도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한정적인 영화에서

고를 수밖에 없다.

 

쌩뚱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산업론을 읽으면서 성경 사무엘상 16장에서 여호와 꼐서

사무엘에게 사울 다음으로 기름부을 왕을 뽑으러 가라는 말씀 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베들레헴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중 한명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새는 많은 아이들 중에 다윗은 말하지 않고, 첫째부터 사무엘에게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으면, 사무엘은 첫째 엘리압을 뽑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있는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이새(거대기업) 가 이새 아들들 (거대기업에서

나온 영화) 만 보여줬기 때문에 사무엘(관객)은 다윗(작은기업의 영화, 즉 관객이

원한 영화)이 있는 지도 몰랐을뿐더러, 해맑게 거대기업 영화 중에서 골랐을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된다.

아무래도 이것은 아도르노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 같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로써 하나의 또 다른 해방을 맞게 해줄 기대를 가지고 있을 벤야민 에게나 써야 될 듯

하다.

그러나, 아도르노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반복되고, 대량생산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 심지어 먹는음식, 입는 옷 등

대량생산되지 않는 것이 없다. 심지어 똑같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오늘날 복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복사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동일한 것들로 다시 만들어 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우리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 어떠한 시대로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여기에 벤야민 은 아도르노 의 의견에 일부는 동의하는 듯 하다.

하지만, 기술복제 시대라고 해도 예술의 고유성(아우라)은 복제 될 수 없다 라고

주장하면서도 그 아우라를 통해 기만을 낳는다. 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는 분명 기술적으로 복제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세대 에 살고 있다. 하지만, 벤야민이 우려했던 것은 틀린 것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 또한 그 아우라 가 언제 발휘될까? 수많은 모방 이 있어야지만

진정한 아우라가 나오기 마련이다. 유명화가의 그림 이나, 뛰어난 가수 의 가창력 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가치는 높아진다.유명화가 의 그림을 모방한 (심지어, 점 하나 까지도 말이다) 그림은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 이나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볼수 있다. 그렇다고 그 것의 가치가 떨어질까? 아니다. 오히려 원래의 그 그림 의 아우라의 가치는 높아지기 때문에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벤야민은 아우라 의 상실을 대체로 긍정하는 것 같다.

복제는 예술의 보급 과 향유에는 긍정적인 영향은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보급 이라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평을 하고 싶다.

베냐민에서 대중문화는 대중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 역할을 가능하게 하였다.

, 고등학교 시절 한때 유행했던 것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베냐민이 주장했던 것과 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된다. 바로 우리 나름대로 짧은 소설을 써서 돌려 보는 것이였다. 지금 대중문화 가 또한 이런 역할을 하는데 주축이 된 것 같다.

이전에는 클래식이나 오페라 같은 것은 귀족층, 특권층들만 누리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대중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예전에는 글을 쓰는 필자

와 글을 읽는 독자가 나눠져 있었다면, 지금은 필자와 독자 의 신분 이 없어지고,

누구나 필자가 독자 가 될 수가 있고, 독자 가 또한 필지가 될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매체 가 계급 신분을 없앰으로써 특히, 서민층 에게 대단한 해방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글 뿐만이 아니다. ‘슈퍼스타K’ k-pop 스타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음악 에 관련된 것만 3~4개는 되고, 요리 오디션, 연극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여기에서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정규 과정을 받은 특권화된 사람들이

아니다. , 대중문화 자체가 이미 해방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동질성과 연대감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능동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지닌 대중들에게 다양한 기술발전의 산물들이 열어놓은

새로운 즐거움과 해방의 도구가 바로 베냐민이 이야기 한 대중문화 라고 볼수 있겠다.

수업시간에도 교수님이 예시로 든 것처럼, 2002년 월드컵 이 가장 쉬운 예가 될수 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서 길거리 응원을 통해 우리는 그 가운데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그 안에서 문화의 창조적 주체로 다시 거듭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쏟아져 나오는 대중문화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돈을 벌고 문화를 즐길줄 아는 대단한 사람으로 느끼고,

그것을 즐기며 살아간다.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상반적인 시각은 사람들 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봤을 문제이다.

(물론, 아도르노 와 벤야민처럼 깊숙이는 아니더라도...) 한 가지 시각은 대중들이

무비판적이고 반복적으로 그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그들의 지각(창조적 능력, 벤야민 이

이야기했던 소외시키기? 비딱하게 보기?)을 우둔하게 만들어 버려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를 일으킴으로써 대중이 오히려

창조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고 새로운 문화적 패턴을 이어 나갈수 있다 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보면 대중문화가 '기만이나 해방이냐를 논하는것에 대해 정답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말을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실리는 힘이 갈리는 것 같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할 때, ‘모방에 힘을 더 싣게 되면 아도르노가 되고,

창조에 힘을 더 싣게 되면 벤야민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나는 비판적으로 본다면, 아도르노 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하면 어차피 사회안에 대중문화가 들어가면 이미 그 구조 속 에 들어가 있다. 또한, 아무리 대중매체를 통해 또 다른 해방이 일어 난다해도, 그것이 대중매체를 타게 되면 또 하나의 상품화가 되고, 또한 거기에서 또 하나의 동일화’ ‘표준화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만 과 해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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