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hallonin > 온건파 파이트 클럽
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보다 사려깊은 타일러 더든의 독백으로 이뤄지는 이 작품은 내내 우울하고 축 늘어진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그것은 흔히들 절망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주인공 나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그 절망의 요인들은 하나 같이 불가해하면서 부조리한 것들이다. 마치 이 세계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은, 마땅히 어찌할 수 없으면서 동시에 현상 그 자체로만 설명이 가능한 신의 의도적 실수. 그는 세상을 커다란 차별과 불평등의 세계로 인식한다. 그래서 그런 세계를 존재 자체로 지리멸렬하게 표상하는 티스랑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엔 동정과 비웃음이 뒤섞여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속이길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티스랑을 속이고 동료들을 멸시하고 정신과 의사의 판단을 조롱한다. 그렇다. 아무 것에도 욕구를 안 느낀다던 이 양반의 정신 세계는 삶에 대한 관념을 초탈해버린 정신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아직 우매한 자들에 대한 멸시에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이 잘난 화자의 유희다.

하지만 그 생명 없는 유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는 화자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 구원을 바라지만 믿질 않으며 그렇다고 완전한 나락에 빠지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늘어 놓는 일장 연설에서 나오는 현대인의 '고통'이라는 개념을 표상한다. 그것은 곧바로 모순이 되고 다시 고통이 되는 영원한 순환의 표현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그 고통의 모순을 파악해버린 화자는 시종일관 무기력한 태도와 어조 속에서도 드러나지 않던 죽음에 대한 매혹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토해낸다.

이 지독하게 지리하며 자학적인 인물의 내면의 결말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일상의 평온을 재발견하기 위한 기억의 소거를 보여줌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자신을 없애면서 자신을 만나고 삶의 목적을 상실함으로써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 아주 흔하고 당연한, 그래서 마땅히 그런 역할을 수행할 듯한 뻔한 풍경 아래에서. 그는 자신이 보던 '당연하다'는 것들을 억제하고 부정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그 흔한 감동 속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여기서 역자가 언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과 비교해서 문학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납득 가능한 친절함이라는 강점을 찾을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지지할 수가 없다. 영화가 생활이라는 이름의 문학이 된다면 그 영화의 가치는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현대인이라고 하는 붙잡을 수 없는 모순의 형태를 띄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황량한 의식을 성공적으로 잡아낸 여정 끝에 보여주는 이 마지막은 외부, 이미지의 붕괴를 통해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던 파이트 클럽의 결론에 비하자면 훨씬 성숙한 결말이다.(어쩌면 경제적 측면에서의 계급 문제를 도입해 볼 수도 있겠다.) 참고로 이 작품은 파시즘적 무정부주의와 키치적인 미학을 극단까지 끌어냈던 그 작품보다 2년 먼저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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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yukino37 > 이제부터 과거를 여행한다!!
구름을 죽인 남자 - 이마 이치코 걸작 단편집 5
이마 이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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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도 티벳과 네팔지역은 이와 비슷한 모습이 펼쳐지겠지요. 가도 가도 광활하고 너른 그러나 물기가 묻어나지 않는 메마른 바삭바삭 잘마른 광경이 말입니다. 과거인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별이 안가는 이 풍경안에서는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는 사람들을 볼수 있습니다.  그 광대한 물줄기이자 시원한 물줄기를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수로시설도 없고 오로지 매달릴수 있는 것은 하늘밖에 없는 그런곳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위대한 용신에게 빌고 또 빕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은 용신이 자신들을 시험하는대로 그 시험에 끌려들어가 시험을 받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 갈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떠나고 물을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참 물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사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잊고 사는듯 합니다. 물길이 말라서 더이상 수원이 없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 초목이 다 마르고 동물들도 할딱할딱 숨조차 내쉬지 못하고 그렇게 비쩍비쩍 말라서 기근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곳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말입니다.  이 책 안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하루치의 물의 양을 나누어서 마실만큼 물이 부족하고 귀해서 목이 말라 기절한 나그네에게 도 그 물을 나누어 줄수가 없는 소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치의 물을 남에게 줘버리면 자신은 내일 마실 물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목이타서 물을 마시는 일보다는 의무감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에 7잔이상은 마셔야 건강에 좋다는 그 의무감에 물을 마시고, 귀찮다는듯이 그렇게 취급했던 저에게는 정말로 이 내용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작가가 이런 교훈을 주기 위해서 이 작품을 썼는지 안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렇게 타는 듯한 갈증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머릿속에서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만큼 생생한 그 기억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숨조차 쉴수 없을 정도로 메마른 곳, 그리고 물은 사람보다 더 귀한 그곳이 바로 이 곳입니다. 환상속의 세상이지만 그렇게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도 아이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고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있고, 자연이 있고, 그 자연은 부족하고 결핍되고 모자라지만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생존법이 살아있는 그곳이기에 오히려 더욱 생생한 생명력을 느꼈습니다. 단편집이지만 아주 길고 긴 이야기 한편을 읽은듯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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