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닥치고 영어 - 영포자가 하버드를 가게 된 기적의 독학 훈련
모토야마 가쓰히로 지음, 이지현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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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 닥치고 영어>

 

일 닥 영!

이 책은 부제에도 있는 것처럼 <영포자가 하버드를 가게 된 기적의 독학 훈련> 안내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원래 머리가 좋은 사람일거야~, 그러니 일 년 만에 영어를 마스터하고 동경대도 들어가고 하버드도 들어갔지~’

그러나 뭐 기죽을 건 없다. 그는 나의 경쟁 상대가 아니니까.

 

어쨌든 결론은,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라는 거~~

 

내가 유학을 갈 것도 취직을 할 것도 아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영어권으로 여행 다니는 꿈은 아직 접지 않았으니까~

사실 저자의 희망대로라면 독서 감상도 영어로 써야 되는데 제일 걸리는 게 부족한 어휘력과 시제 사용~**저자가 이 소리를 들으면 틀려도 좋다, 써봐라 할 테지~~

 

어쨌든 지은이의 권유대로 일 년만 영어 훈련한 후엔 나도 내 블로그에 영어일기를 쓸 수 있겠지?

 

**독학훈련 안내**

1. 3000에 주목한다.

영어 귀가 트이고 영어 입이 트이려면 3000 단어와 3000 시간이 필요하다.

중고교 때 이미 1000개의 단어와 1000시간 정도는 투자했을 테니 나머지를 일 년 안에 마스터할 수 있도록 안배한다.

 

2. 영어공부의 성과= 영어 뇌 x 전략 x 시간 x 효율

1)영어뇌:

70억 인구 중 영어사용 인구는 175-그 가운데 원어민은 39, 나머지 80%는 우리 같은 처지이므로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정확한 발음과 문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영어가 편해진다.

영어를 통한 취미활동(영화보기, 만화, 음악감상, TV드라마, 스포츠 등)을 한다.

 

2)전략:

자신의 현재실력을 먼저 파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공부해야 할지구체적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

1년 동안의 목표>1개월 동안의 목표>하루 목표량을 세운다(거대한 산을 작은 계단으로 쪼개듯이)

영어 귀를 뚫는 법-집중모드, 자연모드, 흘려듣기 모드를 적당히 안배한다.

<유튜브 채널 활용하기>

**Jennifer ESL

**NAVER English Audio News

2~3개월마다 PDCA(PLAN, DO, CHECK, ACT)를 반복한다.

시험을 통해 중간 점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3)시간:

지름길은 없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타난다.

-틈새 시간(출퇴근시간, 식사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꾸준히 활용하면 기대이상의 효과를 거둔다.

-방 전체를 영어공간으로 만든다. 외국 기숙사인양~

-혼자만의 주말유학을 떠난다, 눈뜨면서 잠들 때까지 영어만 쓴다.

-영어스피치 shadowing(따라 말하기)dictation(들으며 받아쓰기) 반복하기

 

4)효율:

즐기면서 익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는다.

-유튜브 영어공부법의 6단계

step1

첫날~일주일

외국노래 듣기, 짧은 ESL강의 듣기

*podEnglish *Speak English with Misterduncan

step2

1주일~1개월

좋아하는 ESL 시청을 습관화한다.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을 본다.

*Sesame Street

*Cooking with Dog

step3

1~3개월

스피치동영상을 추가로 시청한다.

따라 말하기와 듣고 받아쓰기를 시작한다.

step4

3~6개월

쉬운 레벨의 영어뉴스를 듣는다

*VOA(voice of America)를 본다

*VOA Learning English

step5

6~9개월

*TEDEnglish Presentation 동영상 시청

*Clevver TV

*The Tonight Show

step6

9~12개월

동영상 장시간 시청, 세계 일류대학이나 싱크 탱크 등의 회의,토론, 강의 등과 질의 응답 방식 등을 배워 최상급 영어에 도전한다

*FORA tv

 

3.영어는 처음부터 소리내어 읽고 따라 읽는다.

4.하루의 반성을 1분 스피치로 한다.

5.10분 동안 영어로 프리젠테이션 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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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문학자의 6.25
강인숙 지음 / 에피파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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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적나라하고 충격적인 6.25이야기는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인민군이 댓글을 달아놓았다는 그녀의 일기장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기억력이 비상해도 이런 글이 나올 수가 없으리라.

저자와 나의 나이 거리 15-저자가 겪은 일제 말-해방-건국-6.25의 대수난 시기를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보냈다.

 

생존의 밑바닥을 치고 마침내 생을 움켜쥔 그날의 생존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에게 6.25아닌 밤중에 홍두깨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미군 철수 직후라 비행기도 전차도 한 대 없는데다, 모내기철이라 병사들은 부모를 도우러 고향으로 휴가를 떠난 일요일,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서 들이닥친 침략자 앞에 무방비상태의 아군은 허둥지둥 밀리고 밟힐 수밖에 없었다.

한강철교는 서둘러 폭파되어 한밤중 멋모르고 한강교를 들어섰던 차량과 피난민이 맥없이 수장되고 다음날 군사들의 이동에 썼던 작은 배들로 도강을 할 때는 본능만 남은 인간들의 모습을, 꽃다운 나이에 마른하늘의 날벼락을 당한 저자는, 낱낱이 그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

최근에 가슴을 졸이고 본 <국제시장>이나 <덩케르크>가 먼 나라 일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1.4후퇴 때 30만이 얼어붙은 한강을 건너는 대목에선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간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 해에 하늘의 도우심으로 한강이 단단하게 얼어붙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서울을 탈출한 피난민들이 남하하던 중 미군기의 오판으로 폭격을 가해 떼죽음을 당한 일이다.

남쪽의 사망자 중 85%가 민간인이라는데 이런 일이 종종 있었으리라.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랴~

 

저자는 6.25 피난살이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 했다.

내게는 느닷없이 흉기로 돌변하는 차들과 막말과 거침없는 행동들이 난무하는 오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것을~~

 

백척간두의 국가 위기와 개인의 고난이 부산에서 막을 내리고 서울로 입성해서 동숭동 캠퍼스 시절을 구가하는 이야기는 고생 끝에 낙을 누리는자의 뿌듯하고 행복한 모습이라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라도 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본 동숭동 시절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이어령 선생님과의 연애사건(?)이다.

5년을 한결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만났다는 건 어쩌면 만인이 부러워할 만한 기적 같은 일 아닐까?

그런 남자를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자의 선배이자 스승들 중엔 내가 대학에서 가르침을 받은 분들이 많다.

김완진, 김열규, 이재선, 김학동--모두 나의 스승들이시다.

그중 가장 가깝게 느끼고 몇 번 찾아뵙기도 했던 김열규 선생님-그분을 저자는 무뚝뚝하지만 진솔하고 순수한 분이라고 보았다.-은 이미 이 세상분이 아니다. 경남 고성 집으로 찾아뵈었을 때 거실 통창 너머로 가득 밀려오는 바다를 바라보며 선생님이 직접 내려주신 차를 마시던 일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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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몽유도원도를 찾아서 - 안평대군의 이상향, 그 탄생과 유랑
김경임 지음 / 산처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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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이건만 박학다식한 저자의 안목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필력이 독자의 눈길을 잡아둔다.

작가가 조명하려 했던 건 <몽유도원도>에 담긴 안평대군의 꿈과 삶이었다.

 

안평대군은 누구인가?

세종의 셋째아들로 詩書畵에 능해 일찍이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고 古書畵의 수집가이며 藏書家로 학문과 예술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특히 조선 최고의 명필로 일컬어지는 안평대군은 강렬한 정신, 빼어난 기상, 담박하고 선하며 를 즐기는 진실하고 고상한 인물이었다.

아들의 학문과 인품을 사랑한 세종은 그의 당호를 <匪懈堂>이라 지어 하사했다.

게으름 없이라는 뜻의 비해,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도 경계한 세종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형 수양의 음모에 휘말려 그는 단종을 도운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는다(1453.10).

영정조 대에 비로소 명예를 회복, 장릉에 단종 제일의 충신으로 이름이 올려졌다.

 

작가는 조선 삼절로 칭해도 좋을 안평대군의 작품과 그의 자취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음을 발견하고 허망함과 비애감에 젖었을 것이다. 세조와 당시 기록관들이 얼마나 철저히 증거인멸에 힘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안평대군의 작품들은 아마도 그 당시 상황을 소상히 기록했거나 풍자했기 때문에 남겨둘 수 없었던 걸까?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 4)>는 안평대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그림일까?

세종 말년, 안평대군은 꿈에 무릉도원을 발견한다. 이를 안견에게 이야기하니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해 온다. 그리고 어느 날 실제로 백악산 기슭에 꿈에 본 무릉도원과 흡사한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무계정사>를 짓는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안평대군의,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에 은둔하려는, 그럼으로써 사직을 지키겠다는 속내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제목을 쓰고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집현전학사들, 고관대작, 고승 등 21인의 찬문을 받아 몽유도원도를 완성한다.

일본학자조차도 그것은 호화 현란한 연판장이다라고 감탄(?)했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세조의 등극과 함께 유배되거나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최고의 걸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우리의 일급문화재 <몽유도원도>는 어디에 있나?

작가가 계유정난 이후 <몽유도원도>가 유실되어 일본에 정착하기까지의 행적을 좇은 기록은 추리소설을 연상시킬 정도로 흥미롭다. 작품이 어떤 경로로 그곳까지 가게 되었나를 알게 되었을 때 약탈과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일제식민지 역사가 되살아나는 듯해서 울컥하는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약탈된 문화재는 제국주의 시대 강자들의 단합으로 이제는 돌려받기 어려운 현실을 개탄할 수밖에 없는가?

 

황금기를 구가했던 조선 초 세종대왕 때 그 중심에 있던 두 존재-

지금은 어디에서도 안평대군의 자취 찾을 수 없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만질 수 없는 <몽유도원도>는 언제쯤 우리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내어 한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나?

 

입증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안평대군의 삶을 조명하려 시도한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 출중한 재주와 여건을 타고 났음에도 수양의 왕위찬탈의 야욕에 희생되어 사라져간 한 고매한 인간의 슬픈 넋을 위로하고자 하는 작가의 내면이 읽혀져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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