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퍼링 룸 스토리콜렉터 80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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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소설의 첫 장면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것이 나의 편견이다. 그래서 당연히 코라 건더슨이 주인공이라 여겼다. 그녀의 꿈과 일상 이야기로 막을 열었으므로...하지만 이야기 초반 그녀가 사망하면서 새로운 주인공 후보 루서 틸먼이 부각된다. 그리고 코라의 사건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제인 호크의 등장은 독자인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평판 좋고 훌륭한 교사였던 코라의 갑작스러운 자살 폭탄 테러, 사건 전에 보인 그녀의 이상한 행동 징후들, 그 큰 사건을 별 일 아닌듯이 처리하려는 FBI, 법무부 엘리트들, 그리고 그들의 사건 처리를 흘러가는대로 두고만 보지 않는 지역 보안관 루서는 코라가 남긴 단서를 근거로 비밀리에 수사를 시작하고 그녀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여기지는 곳, 아이언 퍼니스로 간다.

남편의 석연치 않은 자살 사건을 조사하다 거대악의 존재와 의도를 알고 그 사실을 파헤치고 막으려다 불량 요원으로 몰린 전직 FBI 요원 제인 호크,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하다 악의 정점 DJ 마이클의 은거지로 파악된 아이언 퍼니스의 저택으로 향한다.

루서와 제인이 아이언 퍼니스에서 처음 보는 서로를 알아보고 공조하는 모습은 정말 짜릿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지 오웰의 '1984'의 업그레이드 된 세상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1984'에서는 노골적인 감시가 지배 수단이었다면 위스퍼링 룸에서는 나노 머신 주사를 통해 뇌를 지배한다. 스스로 지배·조종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최면에 걸린 듯, 마법에 걸린 듯 조종 당하는 사람들. 그들을 조종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며 조종 대상들을 목적에 맞게 쓰다 버린다. 때론 자살의 형태로, 때로는 사고사의 형태로...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더 나은 세상, 유토피아 건설이다. 하지만 그 유토피아는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유토피아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신도 모르는 새 자유 의지를 결박 당한채 살아가는 세상을 과연 유토피아라 볼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사랑하던 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이지만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의 상실감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루서의 딸 졸리는 그렇게 갑자기 변해버린 언니와 엄마를 '좀비'라 불렀고, 아이언 퍼니스의 학교라 불리는 곳에 감금되어 있던 할리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이웃 사람들을 '가짜'라고 불렀으며 제인은 그런 사람들을 '물건'이라 불렀다.

좋은 세상을 건설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소수 엘리트들의 욕망을 채우고, 거침 없이 살인을 조장하고 자살을 유도했다. 무고한 사람들의 의지를 제거하고 무조건 복종만 요구한다. 한 때 뜻을 같이 하고, 계획을 공유하던 엘리트 조직에 균열이 생기고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욕심은 분열과 배신을 불렀다. 머리 둘 달린 뱀을 상대한다 여겼던 제인은 그 머리 둘이 사라지면 된다 생각 했지만 이제 뱀 대가리가 몇 개인지 모른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졸리는, 루서는, 또 제인은 모든 상황,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 그곳이 과연 유토피아일까???

절대 선을 추구하며 드러낸 추악한 악의 모습을 통해 또 한 번 의문을 던진다. 좋은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지켜보는 사람들, 그런 그들은 누가 관리하고 지켜 볼 것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노 머신에 의해 뇌를 지배 당하게 되면, 나노 머신을 컨트롤 하는 자들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 자유 의지를 잃은 채 살아가도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저 작가의 상상 속의 세계이고 나와는 먼 얘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소설 속의 세계.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돈과 기술력을 이용해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조작 가능한 세계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딘 쿤츠의 오래된 팬으로서 접한 이번 작품은

좋은 의도로 만들어 낸 기술이 나쁜 의도를 가진 자들의 손에 들어 가게 되면 얼마나 큰 불행이 닥치는 지를 보여준다. 앞서 발표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필력은 일단 책을 펼치면 도저히 중간에 덮을 엄두를 낼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제인 호크다음 시리즈를 애타게 기다리게 만든다.

세상은 수수께끼와 퍼즐의 미로이지만, 해답이 없는 퍼즐은 제시하지 않는, 이성적인 설계가 있는 세계다. 항상 해답은 있다. 찾아낼 수만 있다면. - P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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