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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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와 사상을 알기 위해 의무적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고전. 번역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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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창문 거울 -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윤원화 지음 / 보스토크프레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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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출발점에 또 중심에 놓기는 했지만, 이 책의 관심은 사진 고유의 미학을 해명해내는 데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비디오 같은 다른 매체의 소스가 되기도 하고, 건축이나 회화 같은 다른 분과의 도구가 되기도” 하며 “세계의 기록 또는 허물이 되기도 하고, 그런 것으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벽지나 질료가 되기도 하며, 우리 몸을 감싸고 피부에 각인되는 무늬가 되기도” 하는, 그렇게 “불가피하게 세계를 이미지의 단편들로 부숴 놓지만, 그렇게 단편화된 조각들로 다른 세계를 쌓아올릴 잠재력을 동반”(p.46)하는 무엇, 다시 말해 동시대적인 의미에 잔뜩 절여진 ‘이미지(image)’의 미학을 시도하는 게 이 책의 목표라고 보는 게 낫겠다.


이 무엇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이미지’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것을 저자는 “그림 창문 거울”이라는 3중의 어휘로 겹겹이 싸매어 낸다. 게다가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저자의 관심은 오늘날 우리 주변을 감싸면서 세계 곳곳을 흘러다니는 “그림 창문 거울”이 위치할 수 있는 다양한 맥락들을 종횡무진한다. 결국 책의 선택은 압축보다는 증폭이다. 1차원의 ‘이미지’는 3차원으로 증폭되어 “그림 창문 거울”이 되고, 다시 이것은 세계 곳곳에 침투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변이한다. 


그런고로 이 책을 이미지에 대한 ‘생태학(ecology)’이라고 부른다면 꽤나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책은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묻는 건 이미지의 본질이 이미지 아닌 다른 무엇이라는 전제를 이미 깔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대신에 책은 이미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묻고, 그것의 ‘생활사(life cycle)’를 면밀히 탐구하는 데에 온 힘을 쏟는다. 


오랫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존재의 본질을 ‘말하기’ 혹은 ‘숫자 세기’에 빗대어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이 눈부신 세계를 직시하고, 우리 존재의 일차적 조건이 다름아닌 ‘보기’라는 걸 알아야 한다. 단, 이 때의 ‘보기’란 언제나 보기 아닌 다른 무언가로 환산되어야 하는 ‘관조하기(theōría)’가 아니며, 그보다는 본래적 의미에서의 ‘보기’, 즉 ‘눈으로 만지기’ 혹은 ‘빛으로 체험하기’라는 의미에서의 ‘보기’다. 책은 동시대 한국 미술을 “그림 창문 거울”로 삼아 이런 ‘만지기’ 혹은 ‘체험하기’로서의 ‘보기’의 가능성의 영역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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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희망 - 과학기술학의 참모습에 관한 에세이 STS collection 3
브뤼노 라투르 지음, 장하원.홍성욱 옮김 / 휴머니스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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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사유, 예리한 문장, 면밀한 통찰, 그리고 세계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이 모든 것을 갖춘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과학 전쟁에 대한 응답(應答)이지만 응전(應戰)은 아닌 이 책은 바로 그런 몇 안 되는 대작들의 반열에 오른다! 


특히 2장, 6장, 그리고 9장은 이 눈부신 작품 안에서도 가장 빛나는 대목들이다. “우리가 동물인가? 우리가 괴물인가? 우리는 단지 대상일 뿐인가?”(p.428)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제 불가능한 혼란’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혹은 그리스 문헌에서 코스모스(cosmos)라고 언급되었으며 이자벨 스탕저가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질서정연한 전체’로 변화시킬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에게 달렸다.”(p.49) 


물론 그 맥락을 짚으면서 정교하게 이해하려 하면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온도와 색감이라도 전달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읽어보았으면 싶은 작품이다. 브뤼노 라투르가 21세기 철학을 대표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임을 다시 한 번 강하게 증언하는 동시대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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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몽상
현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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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두에서부터 저자는 감옥이 우리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작은 세계임을 드러내고자 함을 밝힌다. 
“이 책은 한편으로는 범죄자의 ‘인간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평범한 인간의 ‘이상성’을 드러낸다. 내가 감옥에 간 배경에도 소박한 바람, 날카로운 정치의식, 부적응자의 몸이 혼재되어 있다. …… 예외라 여겨진 곳을 극단이 아닌 삶이 여러 겹 포개진 자리로 제시하고자 했다.” (8쪽) 
교도소를 둘러싼 섬뜩한 벽과 철조망은 일종의 ‘문턱(threshold)’이다. 그 문턱을 경계로 하여, 그 안에는, 그 바깥의 세계를 함축하면서도 동시에 바깥 세계에 편재하는 모종의 양상들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변전(變轉)하는 장소가 펼쳐진다. 감옥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재소자들은 자아 실현에 골몰하는 동시에 권력 투쟁을 일삼고, 계급화된 질서 안에서 각자의 차별화되는 위치를 찾으면서도 공통의 문화를 가꾸고 재생산한다. 다른 것이라고는 바깥과 안 공간의 ‘공간성’,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간의 ‘배치’의 양상 뿐이다. 하지만 그 다름이야말로 모든 것의 다름이다.

그와 같은 공간성의 차이는, 저자가 잘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는 방식을 바꾸고, 각종 사회적 매개의 틀을 재규격화하며, 심지어는 몸과 마음이 맺는 관계를 재규정한다. 감옥의 특유한 ‘공간성’은 동시에 그 장소가 세계의 본질을 구현해내는 고유의 방식이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 두 장은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부분이었다. 이 장들은 한 사람의 실존이 낯선 장소에 던져졌을 때 그가 자신의 몸, 자신의 감정, 자신의 사회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 자체에 대한 자신의 환상과 어떤 협상 아래에로 강제되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후반부는 감옥에서의 시간성과 육체성을 간단하게 다룬 책의 첫 두 장과 함께 이 책을 감옥의 ‘사회학’, 감옥의 ‘미시 정치학’으로뿐만 아니라 감옥의 ‘존재론’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지점들을 만들어낸다.
“시간이 사라진 세계에서 텔레비전은 삶의 새로운 기준점이 됐다. 나는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씨름을 한다. …… 이 이상한 세계를 텔레비전과의 관계로 축소시키자, …… 집중력이 살아나면서 의식이 명료해진다.” (22쪽)
“항문출혈이 심한 날에는 떨어지지 않던 두통이 사라져서 기분이 상쾌했다. …… 한의학이나 근대 이전의 서양의학에는 사혈瀉血이라는 치료법이 있다. 출혈이 내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해낸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4쪽)

한편 책의 중·후반부는 감옥과 바깥 세계의 연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감옥에서의 계급화는 감옥 바깥에서의 계급화에 대한 단순한 
‘반영(reflection)’이기를 넘어서 모종의 ‘굴절(refraction)’을 만들어내는데, 이와 같은 굴절의 지점들이 상당히 흥미롭다. 정말 많은 곳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빛난다. 특히 두 가지 중요한 통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첫째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거부와 징역이라는 ‘일반화된 루트’ 안에 놓임으로써 국가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통찰이 드러나는 11장이며, 둘째는 재소자들이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인간이라도 그 자리에 놓인다면 갖게 될 법한) ‘파괴적 감정’을 그들의 ‘범죄적 성향’과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13장에서의 논의이다.
“그러나 수감자는 수감자이기 때문에 몸에 쌓여가는 공격성과 적개심을 규명하고 표현할 기회가 더 필요하다. …… 교화라는 명목이든 나처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규율 때문이든 파괴적 감정을 부정당하는 것은 수감자의 몸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205쪽) 
“수감자”라는 표현과 “범죄자”라는 표현의 의미상 차이를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히 과학기술학이 전공인 나에게 흥미롭게 보였던 부분이 둘 있다. 하나는 앞서 인용했던, 감옥의 시간성을 규율하는 ‘텔레비전’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수감자들의 소지품에 대한 ‘전산화’가 갖는, 수감자들을 분열시키는 성격이다. 이 두 경우들은 각각 감옥 바깥의 우리 세계에서 (현대 기술문명의 양대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미디어’와 ‘계산(computation)’의 문화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가지는데, 이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깊게 숙고해보면 미디어와 계산의 사회적 본질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피상적인 관심과 감옥 안의 사회적 삶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오늘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관한 상당히 무게감 있고 복잡한 책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자신의 욕망과 치부까지도 숨기지 않고 기록해낸 저자의 용기는 더더욱 놀랍다. 덕분에 나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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