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걸 클래식 컬렉션 1
요한나 슈피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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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하이디 – 요한나 슈피리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는 말은 알았어도 정작 책은 읽지 않았다가 이번 알라딘 단독 독자 리뷰대회로 읽게 된 책이다. 리뷰대회 아니었으면 읽을 생각도 없었던 책인데 읽어보니 참 좋았다. 어떻게 보면 뻔한 동심을 다룬 동화 같지만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은 없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 어린 소녀 하이디’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기본이고, 신은 믿지만 종교는 아직 없는 내가 읽었을 때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가끔 나오는 이 책에서 처음에는 ‘아니 웬 하느님? 웬 기도?’라고 생각하다가 소설을 읽으면 읽어갈수록 나중에는 전혀 거부감 들지 않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어서 신과 운명을 더욱 믿게 되는 것은 덤이다. 물론 아직도 종교를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감화나 경험은 없어서 신의 존재를 믿는 것에서 발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계기가 생기면 종교는 가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이 편하게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눈에 보이는 듯한 생생하고 반복적인 묘사와 하이디의 말하기 힘든 매력에 푹 빠져서 인 것 같다. 남이 행복한 데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소녀, 조금이라도 어두운 면이 보이는 사람을 절대 지나치지 못하게 타고난 소녀, 남을 돕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소녀, 쉴 새 없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소녀, 자연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여 하나씩 살필 줄 아는 소녀. 너무 순수하고 사랑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데테 이모가 하이디를 할아버지인 알프스 삼촌에게 떠맡기고 갔을 때 할아버지 집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다며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하이디의 눈빛을 보고 맹한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알프스 삼촌도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속사정이 있었던 관계로 겉보기에는 무뚝뚝해 보이고 험상궂지만 염소들처럼 뛰어다니고 싶다는 하이디에게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어디서 자야하냐는 소녀의 물음에 “자고 싶은 데서 자렴.”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자유분방하고 소박한 하이디를 제대로 키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제제만씨가 출장을 갔다 돌아와서 미스 로텐마이어로부터 하이디에 대한 안 좋은 말을 들었을 때에 “아이의 재미난 행동을 결점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던 부분에서 감동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반성도 했다. 지금 학원선생님으로 일하는 내가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나?’를 돌이켜 보게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공부를 시키려고 하다 보면 아이들의 장난이나 헛생각, 헛짓에 대해 나무라고 제지를 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되뇌어 봤었다. 결론은 그런 행동을 제지는 하되 제제만씨의 말처럼 ‘결점으로 여기지 말자. 그런 아이들을 미워하지 말자.’이다. 나도 알프스 삼촌이나 제제만씨처럼 곧 태어날 아기와 그 다음의 미래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각과 의지를 굳히기만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그런 어른이 될 거라고 다짐을 해 본다. 교육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이 소설에는 알프스 삼촌과 제제만씨 외에도 훌륭한 어른의 모범이 또 한 명 있는데 바로 제제만씨 어머니인 제제만부인이다. 하이디가 보기에 그녀는 ‘어떤 상황이 닥치던 만사를 원만하고 행복하게 푸는 방법을 찾아내는 분’이다. 내가 만난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인물이지만 하이디의 안목에 찬성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하고 실천하게 해 준 하이디와 저자 요한나 슈피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소설 속에서 나의 마음을 특히 흔드는 장면들이 있었다.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둘이서 사는 통나무집에서 페터의 할머니인 그래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썰매를 태워주고 하이디가 춥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하는 알프스 삼촌의 태도가 매우 귀여웠고 썰매 타는 모습을 읽을 때는 나도 타보고 싶을 정도로 너무 재밌겠다고 느꼈다. 어렸을 때 쌀 포대자루를 타고 작은 언덕배기에서 놀기는 해 봤지만 하이디와 삼촌이 타는 썰매와는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신날 것 같다. 데테 이모의 손에 이끌려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좋은 사람들, 특히 클라라를 만나고 알게 되고 촉촉하고 맛있는 롤빵을 먹으며 지내서 좋은 날도 있었지만 하이디가 진정으로 원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 아래로 난 길 위의 평화로운 작은 집이 그리운 하이디가 울면 안 된다는 미스 로텐마이어의 한 마디 때문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참는 부분을 볼 때 너무나 안쓰러웠다. 다행히 내게는 아직까지 그런 슬픈 경험이 없어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런 비슷한 경험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함께 울었을 것 같다. 하이디의 증상을 정확히 진단해 주었던 의사 클라센씨 덕에 ‘드디어 집으로’ 갈 수 있게 된 하이디의 눈에 들어온 낯익은 산봉우리들이 내 눈에도 들어온 것만 같았고 ‘그 산들이 오랜 친구처럼 하이디에게 오래간만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고 할 때 나도 그 인사를 받는 것 같아서 자연을 만끽하는 느낌을 받았다. 제제만부인의 덕에 거의 하룻밤 만에 철자를 다 익히고 글을 읽을 줄 알게 되고 나서 그녀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림책 한 권을 할아버지에게 읽어주다가 할아버지를 다시 아랫마을 이웃들과 교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줬던 대목도 인상 깊었다. 실제였다면 한 사람이 인생을 바꿔준 것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염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하이디도 너무 귀여웠지만 저자가 염소의 생김새나 행동을 묘사한 부분들도 마음에 들었다. 염소들이 하이디나 클라라에게 머리를 비벼대는 부분을 읽으면 마치 나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교훈적인 내용도 들어있어서 아이들이 읽기에도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클라라가 하이디와 함께 지내면서 하이디를 뺏겼다고 생각한 페터가 클라라의 휠체어를 일부러 골짜기 아래로 떨어뜨려 박살나게 한 후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파수꾼’인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던 점과 제제만 부인과 휠체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당장 털어놓는 것이 고생을 훨씬 덜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점, 그리고 아무리 호화스럽고 아름다운 집이나 침대가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통나무집이라도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고 건초더미라도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잠자리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데테 이모가 거의 강제로 프랑크푸르트의 제제만씨네 집에 가서 클라라와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눈물을 삼키며 참기도 하지만 ‘마치 자유를 향해 창살 사이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새장 속 야생의 새 같은’ 하이디가 향수병 때문에 몽유병까지 앓게 되어 읽고 있던 나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하이디에게 어느 곳을 둘러봐도 돌, 벽, 탑들 밖에 없는 도시에서 지내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지금 시대에 온갖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가 스위스에서 하이디처럼 살게 된다면 그 또한 힘든 일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습관과 적응의 동물이기에 하이디와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내게는 별난 경험이었다. 그리고 하이디는 향수병에 걸린 반면 하이디 덕에 클라라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개인 과외 수업 시간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고 언제나 웃을 일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모순도 내게는 하나의 생각할 거리였다.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제제만부인의 말에 따르면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기에 우리에게 진짜 좋은 게 뭔지 아셔서 우리가 뭔가를 기도하며 부탁해도 우리에게 옳지 않으면 그걸 주시지 않고 그럼에도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계속 기도를 하면 더 좋은 것을 적당한 때에 주신다’는 부분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생겼었다. 과연 소설을 끝까지 읽다 보니 하이디가 집으로 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을 때 하느님이 하이디의 기도를 바로 들어줬다면 이 소설의 마지막처럼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제제만 부인의 말을 믿고 기도를 계속해 왔던 하이디가 외동딸을 잃고 스위스로 여행을 왔던 제제만씨의 친구인 의사 클라센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면 하느님에게 말해보라고 하지만 클라센이 슬픔을 보낸 분이 바로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이에 하이디는 자신 있게 “일단 기다리셔야 해요. 하느님이 그 슬픈 일로부터 좋은 것을 준비해두고 있다고 계속 생각하세요.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셔야 해요.”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고 신에 대해 감화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페터가 클라라의 휠체어를 일부러 박살낸 후 제제만 부인과 나눴던 대화중에서 “너는 클라라에게 해코지를 하기는커녕 큰 도움을 주었어.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는 방법이란다. 잘못을 저지르고 그 대가로 괴로움을 당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었어.”라는 부분에서도 ‘아~! 정말 그렇구나!’했다. 그래서 신은 믿지만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은 내가 언젠가 계기만 생긴다면 종교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 꼭 한 번은 스위스에 여행하러 가서 하이디가 살던 되르플리에 방문하고 책에서 봤던 경관들과 자연들을 만나보고 싶고 되르플리로 하이디를 보러 여행 왔던 제제만 부인이 마음에 들어 했던 골짜기와 산봉우리들도 직접 보고 싶고, 푸른 하늘이 펼쳐진 특별한 ‘식당’에 가서 부드러운 미풍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사르락사르락 소리를 내며 상쾌해지는 음악도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하이디의 기운을 가상으로라도 실제처럼 느끼고 싶다. 아픈 몸만 아니라 아픈 마음까지 달랠 수 있는 그곳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그래서 “내일 염소들과 함께 산 위의 고원에 가시지 않을래요?”라며 까만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 하이디의 ‘최고의 환영 선물’을 나도 받고 싶다. 나의 목표와 소원에 추가해야겠다. 그리고 하이디 같은 생각과 감정을 잊지 않고 살고 싶고 미래의 아이들도 그리 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이후의 나를 포함한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 모두 ‘날이 밝으면 즐거운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던’ 그래니처럼 이전보다 희망찬 기대를 가지고 매일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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