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유 즉, 이성과 본능 즉, 욕구를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공유할 수 없는 가치로 놓고 인간을 분류한다면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택할까? 아니 그 선택권조차 뺏어버린 세계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행복은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성으로써 인간을 풀어낸 프로이드도, 이성을 가미한 존재로써 인간을 묘사한 그이 제자 융도, 욕구가 해결되면 형이상학적 이성에 대한 니즈를 찾는다고 말한 매슬로우도 멋진 신세계의 세상을 이론적으로 풀기는 어려울 것이라 본다.

 

올더스 헉슬리가 서술한 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는 고도화된 기술로 인해 사람들은 인공자궁에서 태어나고, 사회가 정해준 알파부터 시작되는 계급 속에서 신체적, 이성적 조건이 세팅된 계층으로 주체가 아닌 객체로써 사회의 부분이 되어 존속하게 된다.

 

가장 상류층인 알파계급은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도 않은체 본능에 충실한 쾌락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매너리즘이 밀려온다 싶으면 소마라는 약을 통해서 다시 쾌락으로 빠져든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끈끈함도 책임감도 자손번식의 본능도 잊은 채 오직 쾌락을 쫓는 자유 성애적인 모습의 로마멸망직전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의 체계도 무너트리고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신의 섭리도 망각한 채 일부에는 유토피아고 일부에는 디스토피아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아니 정해진 세계를 보여진다.

하지만 1930년대 쓰여진 그의 창작 소설은 현실의 모습과 사뭇 닮아있다.

능력보다는 이미 정해진 혈연이라는 이름하에 부는 대물림되고, 사회적 계층은 사라졌지만 그 빈공간을 채운 빈부의 격차는 더욱 무서운 차별의 잣대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갔으며, 한쪽은 쾌락에 그리고 다른 극단의 한편은 쪄드는 가난에 빠져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못하는 현실에 그림자로 헉슬리의 데자뷰가 되고 있다.

철학은 현실의 이념이고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듯이 오래전 쓰인 작품 멋진 신세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아프게 느껴진다. 정해진 구조 속에서 현실을 바라본 조지오엘의 ‘1984’와 같은 느낌으로 전해오는 멋진 신세계가 주는 교훈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