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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창비아동문고 138
권태선 지음, 강우근 그림 / 창비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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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심으로 가슴을 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낮은 곳을 향해 낮은 곳의 사람들을 위해 살다 간 제정구 의원에 관한 TV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았을 때 한 동안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었고 그리곤 또 한 동안 잊고 살았었다. 그러다 오늘 밤 아들아이를 위해 빌려온 창비 아동용 위인전기인 [마틴 루터 킹]을 읽고 잊고 살았던 그 감동이 되살아났다.
 

 그 어떤 허구도 이런 감동을 지어내진 못할 것이다. 감각적이고 멋들어진 그 어떤 문체도 진실에 바탕을 둔 소박한 문장 앞에서는 그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작가 프로필을 보니 권태선님은 1955년에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여러 가지 책을 번역하기도 한 분으로 현재 한겨레신문 기자라 했다. 이 책은 그분이 미국에 거주할 당시 킹 목사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딸아이들을 위해 미국의 흑인 운동가였던 킹 목사에 관해 이것저것 알아본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게도 이 사람을 소개하고 싶어져 쓰게 된 책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지만 마흔을 앞 둔 내게도 자꾸만 흔들리는 인생관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들어준 아주 고마운 책이었다. 진정 좋은 책은 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게 씌어져야 한다는 평소 내 생각이 좋은 동반자를 만난 기분을 느낀다. 아이들의 책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

  마틴 루터 킹 목사에 관해서는 예전 성문 종합 영어를 공부하던 당시 “I have a dream."이란 문장을 통해 접한 것을 끝으로 단순히 흑인 인권 운동가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렇게 쉽고 구체적인 예와 훌륭한 번역이 어우러진 킹 목사의 전기는 없었던 것 같다. 아니라면 내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아 그런 책이 있는 줄 몰랐던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마틴이 어렸을 적 함께 놀던 톰이라는 백인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아이의 엄마로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 더 이상 함께 놀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세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화두와 같은 그 문제의식은 마틴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목사직을 택하기까지 이어지며 결국 인류 평화를 위한 현안으로 확장된다. 자신의 일--사람에 대한 사랑,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노력--을 소명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또 신앙의 힘이 없었다면 과연 그러한 일관된 여정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난 그의 전기를 읽으며 킹 목사는 참 행복한 삶을 살다간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분명 그의 물리적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흑인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숱한 난관과 그의 운동을 혐오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을 겪으며 분명 그는 많은 갈등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는 데 있다. 많은 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살아가며 아주 작은 갈등이나 어려움조차 버거워하며 이겨내지 못할 때가 많은 내게 킹 목사의 ‘이겨냄’이 행복한 삶의 증표로 보인 것일까.

  솔직히 그의 탁월한 문학적 능력이나 지도자적 안목 등은 아예 따라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저 킹 목사가 평생 지니고 있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 실천을 조금이나마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생존경쟁의 아비규환 같은 신자본주의·국제화의 시대에도 나는 나 자신 내 가족  뿐만 아닌 이웃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끝으로 다시 한번 작가분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소위 학문적 글쓰기에 관한 심각한 회의에 빠져있던 나는 구원의 샘물을 맛볼 수 있었으니까.
  “아름다운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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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
최진석 외 지음 / 예문서원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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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서원에서 나온 같은 제목의 책을 사려고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1996년 7월 1일 초판 1쇄로 출판된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원제, [易傳與道家思想], 진고응(중국분) 저, 최진석, 김갑수, 이석명 공역, 예문서원 )란 책이 있거든요. 그런데 같은 제목으로 역자 중의 한 분이 책의 저자로 표기가 되어 있네요.  

문제는 목차가 중국 저자의 책과 거의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직 사서 보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하군요. 번역한 책을 저서로 다시 낸 것인지 아니면 역자를 저자로 잘못 기재한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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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1
심재관 지음 / 책세상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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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이 책은 작은 부피와는 달리 저자의 공력과 학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짠~하게 묻어나 있었습니다. 식민 시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불교학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처한 현재의 불교학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책 끝부분에는 <더 읽어야 할 자료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친절한 내용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어 계속 관심분야를 확장하실 분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아직 근대나 민족 개념에 관한 독서량이 짧은 관계로 다른 책과 비교해서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저자가 학계의 사대주의적 성향에 대해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정확하고 따끔하게 짚어내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88쪽의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외국의 목소리를 답숩할 뿐만 아니라, 제국의 후광으로 개인의 영달을 꿈꿀 뿐 기초 연구를 위한 자기 희생은 없었다..."를 읽으며 '해바라기 군단'의 '자식 외국에서 가르치기' 유행이 오버랩되더군요.

75쪽의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 마련되어야 할 제도적 장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42쪽에서 "초기 불교 연구의 목록은 아시아를 답사한 소수의 선교사들이나 제국주의의 관료들이 수집한 필사본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의 수집은 단순히 개인의 호기심에 의한 발굴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국가적 기관에 의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 학문적 역량의 축적이 순수한 학자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들 나라의 과거 속에서 더 분명해진다."와 연관지을 수 있는 어떤 대규모의 국가적 지원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이 책은 불교학 뿐만 아닌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한번쯤 정리하고 넘어갸야 할 '왜 공부를 하며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훌륭한 나침반 구실을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미주를 각주로 처리했더라면 하는 점입니다. 다행히 책 분량이 많지는 않아 그런대로 미주를 펼쳐 보며 읽었으나 그래도 그 때 그 때 확인하며 읽을 수 있는 각주가 더 편리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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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yboat 2006-03-04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재관선생님이 불교 평론 22호에 근대 한국 불교의 한 진경이라는 글을 쓰셨는데, 이 책과 맥락이 비슷할지는 모르겠으나, 식민지를 경험하며 형성된 한국 불교의 또 하나의 모습을 지적을 하시는데, 일단 재밌습니다.. 근대화라는 과제와 일제 식민지라는 두 상황이 한국 불교의 방향을 어떻게 몰고 갔는가..하는 얘기인데, 한국 불교의 근대화와 민족주의라는 두 담론에 생각꺼리를 제공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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