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엌 - 노년의 아버지 홀로서기 투쟁기
사하시 게이죠 지음, 엄은옥 옮김 / 지향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노후까지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삶의 축복이다. 혼인을 할 때에도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고 남녀가 서로 서약하지 않는가. 젊었을 때는 자식들을 위해 한 평생 헌신하고 노후에야 서로에게 의지하며 남은여생을 행복하게 보내리라 다짐하게 되지만 이는 나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신의 뜻에 맡길 수밖에. 점차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식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나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관리하며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홀로 남은 아버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딸과 그 주변인들이 돕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일흔을 넘는 경우도 흔치 않았는데 이제는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후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여 제 2의 기회의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사라고는 해본 적 없는 83세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부인이 폐암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자식들이 있긴 하지만 딸들 모두 출가한 상태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파산상태이기에 그 누구도 아버지를 부양하고 책임져 줄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설이나 추석 명절 때면 TV 드라마의 주요 소재는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려는 자식들 간의 갈등이 주초점이 되고 있다. 한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등골이 휘어지도록 헌신한 부모에 대한 이들의 태도를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그들 또한 아이들의 부모요, 부양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경제적인 부담감은 높아져만 가니, 이를 어쩌겠는가. 반면에 내 부모에 대한 효를 넘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버지를 모시기에 여러 가지 방편을 생각해보지만 누구에게도 부담주지 않고 스스로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식들은 합심하여 돕는다. 미혼의 셋째 딸은 아버지의 두뇌회전과 치매예방을 위하여 일기와 편지쓰기를 권하게 되고 이를 통해 아버지의 내면을 읽어가게 된다. 아버지가 쉽게 이해하고 행하실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순서를 써놓고 반복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심신이 건강해야 원하시는 삶도 하실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드린다. 혼자 사는데 익숙해짐에도 인간으로써 겪는 외로움의 순간은 아버지에겐 어쩔 수 없이 찾아온다. 가족과의 대화와 정이 오고가지 않는 텅 빈 적막감이 노년의 아버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혼자 사는 데는 심신이 건강해야겠지만 특히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다. 혼자 살기는 해도 마음을 지탱해 주는 상대, 이야기 상대, 칭찬해주는 사람, 야단치는 존재가 모두 잘 조화되어야 심신의 건강이 유지된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 혼자 사는 생활에 변화를 주고 색칠을 하는 데는 사람이나 자연과의 교류가 중요하다. -p168」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무슨 일이든지 함께 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일 년, 그 이상의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무책임한 것보다 자신의 선에서 부모에게 할 수 있을 만큼의 효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전화 드리고 찾아가 뵈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인 것이다.


「빈 집에 사육당하는 새 같은 몸, 주인이 가끔 먹이를 줄 뿐이다. 살아만 있다고 좋은 건 아니야. 나는 따뜻한 마음, 사람이 그립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따스한 감정을 맛보고 싶다. 매일은 바랄 수 없으니 가끔이라도 좋다. 그것도 무리인지, 내 마음은 딸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p 302」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몸과 마음의 노화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나의 부모님의 모습은 훗날의 내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평소 무관심했던 최소한의 도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효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서 뭔가 그 분들을 위해 해드려야겠다는 결심이 서는 순간 이를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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