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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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에 어딘가 판타지나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과 표지다. 그러나 책장을 넘겨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자 오롯이 불완전하고 자비없는 현실 한가운데에 놓인 한 여자가 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여자. 그렇게 6년이 지나버린, '실종'이었다.

누군가에겐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죽음과 끝, 그러나 또 다른 누구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한한 미련과 믿음으로 남아있기도 하는 실종. 거기에 30억의 보험금과 수령인, 홀로 남은 남편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이것은 또한 단순한 실종 사고가 아닐 것만 같은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그런 마음들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는 예상이 될 법하면서도 짐작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소설은 어느 날 의뢰를 받고 실종된 여자를 찾아가는 한 민간조사원의 시선을 줄곧 따라가는데, 직접 발로 뛰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 관련된 일화를 들으면서 짜여지는 그의 추리는 곧 여자의 삶 그 자체를 그려나가는 것과 같기도 하다. 한때 형사였던 자로서 갖춰진 노련함과 추리로 조사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와 맞물려 촘촘히 엮이고 덧붙여지는데, 이를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400페이지가 넘는 꽤나 긴 분량임에도 빨리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곧바로 제목과 표지로 돌아와야 했다. 얼굴과 목, 귀와 몸통을 경계로 그어진 선. 다만 그 안에 선 자의 얼굴과 표정에 오롯이 주목하게 되면서 '화성의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시작과 끝으로 이루어지는 시간 속엔 나조차도 몰랐던 그 너머의 것이 있다고, 그래서 다만 지켜보고 곁에 머물러 있음이 유의미해지는 것임을 느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을 멈추고 표지 속 인물의 얼굴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들은 동일한 고통 속에 놓여 있다.

둘 다 저마다의 화성에 버려져 있다.

척박하고 황량한 땅에 홀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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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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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스트 프리퀀시>는 여느 단편 소설집과는 다르게 단 세 편의 단편들이 모여 한 권을 이뤄내고 있다. 이는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기획된 '트리플' 시리즈만의 구성으로, 책 한켠에 적힌 소개에 따르면 작가와 작품, 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이루어짐을 바란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도 하다.

그래서인가. 유독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작품 너머 작가의 존재를 자꾸만 인지하고 있었다. 단지 누군가가 창조해낸 작품 하나를 마주한다기 보다는 마치 창조자의 머릿속 그 자체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혹은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던 것도 같다. 이런 세 편의 소설을 구성해낸 작가는 어떤 이일까. 틈만 나면 인지해보려고 했다. 신박한 듯 난해한 듯한 이야기의 구조가 아마 다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인 듯도 하다. 처음 보는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작가만의 짜임이 있었다.

보통 작가의 말과 해설로 끝나는 것과는 다르게 '운명의 수렴'이라는 작가의 에세이가 마지막에 꾸려져 있는 것이 그래서 좋았던 것 같다. 앞선 소설들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질문과 느낌들에 대해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답을 얻은 기분이랄까. 삶과 죽음, 가족, 글, 쓰기에 대한 작가만의 생각과 감각이 이 소설집 한 권에 잔뜩 칠해져 있어 개인적인 취향과는 달랐지만 여러 부분에서 주목하며 읽었다. 읽는 내내도 그렇고,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어느 무의식 속에 깊게 빠진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곳은 작가의 무의식일까, 나의 무의식일까. 그런 생각에까지 한없이 잠겨내려가는 소설이다. 어느덧 소설이라고 하는 개념 자체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고, 결국 그 어떤 질문도 쉽게 마무리짓지 못한 채 감상을 마무리해본다.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는 다시 불을 끈다. 주위를 더듬어 의자에 다가가 앉는다. 거기서 그가 하는 것은 단지 듣는 것이다. 어둠 또는 희미한 분광의 심박을 헤아려보듯, 작은 녹음기의 두 귀를 앞으로 내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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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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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한 여자가 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모차 안에 있어야 할 아이가 비정상적으로 목뼈가 꺾인 채 아래로 떨어져 있던 것이다. 그렇게 여자는 채 세 살이 되기 전 첫 아이를 떠나 보내야 했다. 여자는 생각한다. 어디부터가 잘못이었을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생각한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가족의 평화와 안정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찌 보면 죄책감으로 제멋대로 피어올랐을 생각은 곧 의심이 되어 상상 이상의 곳까지 퍼져 나가고, 그것은 돌고 돌아 다시 스스로에게 다달으면서 더욱 집요해진다. 여자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미심쩍은 일들은 그렇게 진실과 허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어가며 또 다시 끝없는 의심과 집요를 이끌어내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모두를 이끌어 완전히 뒤섞어 놓는다.

아이를 잃은 자의 고통은 그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없음에서부터 그 고통을 짐작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짐작조차도 감히 불가할 정도의 고통과 혼돈으로 서사의 감각들을 조금씩 일깨워낸다.

이야기의 초반,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균형을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 주인공의 상황 자체에만 집중해보는 시도에도 잠시, 정도도 모르고 한없이 깊숙한 곳으로,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고 엉키며 뒤섞이는 혼돈과 불안 그 자체의 이야기에 어느 순간부터 정신이 혼미해졌다. 당장 벗어나고 싶을 정도의 괴로운 혼란이었는데, 이것은 사실 '민'의 내면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건 오직 민의 이야기이자 내면뿐이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기이한 사건과 '민' 자신만의 심증으로 엮여져 나가는 진실 혹은 망상은 쉽게 그 어느 한 곳으로도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짐작할 수 없는 짐작으로 거리를 둔 채 시선을 유지하려는 태도는 점차 흐릿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혼란에 동화되어 어느새 주인공과 같은 물음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하지만 결국 남게 되는 건 결국 감각뿐이다. 아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한 여자의 고통이 가득 담긴 본능만은 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책장을 겨우 덮었다. 그것만으로도 현실보다 감각이, 감각보다 짐작이 얼마나 가벼운지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원인이 아닌 결과만이 존재하는 듯한 사실과 결국 파멸이 이끌어내는 것이 또한 파멸이라는 것이 이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오직 외로움과 고독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언제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진실을 물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결과와 벌어진 사건만이 그녀가 처한 상태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진실은 물속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모든 게 민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치자. ....(중략).... 그들의 불행에 개입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민은 분명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자신에게 치료를 권하고 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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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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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는 것 같기도, 혹은 소설가의 문장을 읽는 것 같기도 한 이 책은 작가가 곧 자신을 죽여나갈 뇌종양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인가, 한 페이지나 두세 페이지로 다소 짧게 이어지고 있는 글묶음들을 그저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그저 숙연하게 문장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작가이자 인간이자 죽음을 앞둔 자로서 그가 써내려간 글엔 과연 어떤 생각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미리 안타깝기도 한 마음으로. 그러나 작가였던 그가 여전히 작가인 채로 읽고 쓴 글엔 어떤 특별한 마음가짐이나 시선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곁에 둔 심정으로 써내려간 글엔 죽음뿐 아니라 삶 또한 가득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인간이기도, 언젠가의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는 데 별다른 차이가 없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 같은 것들을 조금씩 접어나가야 했다. 물론 여전히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한편, 대신 그의 생각이 담긴 문장과 순간 순간이 담긴 장면들 자체에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글 한 조각에도 담겨 있었듯이 그곳엔 오직 죽음 또는 삶만이 아니라 죽음과 삶 모두가 함께 담겨 있었고 그 자체가 모든 인간이 경험해나가는 삶 자체이기 했기에.

한 번쯤 인간으로서 떠올려봤을 질문과 잠자코 외면했던 생각들을 주저없이 드러낸 몇몇 문장들은 그래서 오래도록 내 마음 안에 남기도 했다. 또한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기도 했고.

공감과 위안, 마찬가지로 깊어지는 생각과 불안 등이 전해지는 그의 생각의 깊이는 깊고도 단단하며 동시에 삶과 죽음 모두를 관통해낸다. 결국엔 언제 어떻게 정해지든 아무튼 죽음을 앞둔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하나 하는 물음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며 보게 되는 이 책의 철학적 문장들은 그렇기에 살다가 한 번쯤 다시 꺼내보고 싶어진다. 느슨하게 붙잡고 있던 삶의 끈을 다시 제대로 움켜쥐고 싶은 마음이 바로 이런 순간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듯도 하니까. 그곳엔 비관과 희망이 함께 있을 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짧은 순간순간, 수만 가지의 이유로, 인생은 굉장히 명징하게 보이고 의미로 흘러넘치기도 하다. 그러다가 거의 정확히 같은 시간만큼 아주 짧은 순간, 인생을 살아야 할 모든 이유와 위안이 사라지기도 한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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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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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페이지가 넘는 꽤나 두둑한 두께의 책은 영어덜트 소설이자 장르 소설인 만큼 소재도 흥미로웠고 빠르게 읽혔다.  사실 이 소설의 내막은 다소 복잡하고 깊고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문장도 쉽게 읽히고 전개도 굉장히 빠른 편이어서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초반 내용이 무난하게 읽히긴 했지만 중반부 쯤부터는 이야기가 예상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빠르게 숨겨놓았던 그 넓디 넓은 내막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스노볼과 액터, 디렉터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특유의 충격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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