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20대 후반의 윤택수가 고향에 다니러 와서 유성에 잠시 나왔다가 고등학생이었던 나와 어깨를 스치며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까? 어쩌면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시간에 함께 식사를 했을 수도 있었겠다. 아니 그보다는 유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며 시공간을 함께 했을 개연성이 더 높겠다.
지난 봄에 김서령 작가님의 「참외는 참 외롭다」를 읽으면서 알게 된 책들 중, 읽기도 전에 아니 주문하기도 전에 이미 보석같은 책이 될 것임을 알았었다.
오늘 그의 전집 마지막 책인 「벌채상한선」을 다 읽었다.
멀리서 파도소리만 들리는 평해의 고요한 저녁 풍광이 떠오르고 그 안에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흐르는 시간처럼 자연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소설은 흔한 소설의 형식과 분명 다르다. 21개의 장에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단편이기도 하고 수필이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게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소설을 읽으며 연필로 인물들을 메모하고 관계들을 그려가는 것도 즐거웠다.
어쩌면 윤택수는 더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 평해라는 작은 읍의 한 시절을 큰 도화지에 담아 그려내고 싶었을 것 같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참 좋다.
성당에서 이뤄지는 현성희와 성진식의 관면혼인식과 잔치.
평화롭고 즐거운 장면이다.
마치 동막골 잔칫날이나 김용택 선생의 산문 「그리운 것은 산 뒤에 있다」에 나오는 ‘돼지 잡는 날’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된다.
아. 그리고 나도 재국이 같은 소년을 사랑하고 싶다. 무인의 절조가 배어있어 옷 나부낌 하나 예사롭지 않고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보여도 말굽 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런 존재.
윤택수의 글들은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시리기도 하다. 그의 글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내 능력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김서령 작가의 해설에 잘 설명되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책을 사서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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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야기의 배경이 평해일까?
만약 대전과 조치원을 오가며 청춘을 보내고 있던 20대의 내게 누군가가 평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면 어땠을까?
바닷가 읍소재지, 푸른 동해바다 푸른 파도, 근사한 소나무 숲, 아담한 성당
그 이야기 자체가 소설로 다가왔으리라. 미지의 세상으로 느꼈으리라. 그러면서도 그곳이 존재하고 가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설레임이 컸으리라. 늘 동경하게 되어서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문득 떠나서 가고 싶은 곳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이 책의 해설을 쓴 김서령 작가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벌채상한선’인지 궁금하다. 혹시 멋진 소나무가 평해 쯤부터 시작되어서 일까? 베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지켜야하는 숲. 그리고 버려지지 않도록 지켜지길 바라는 소설속 삶들의 순정과 순수.. 그런걸까?
끝으로 윤택수를 사랑해서 그의 글들을 모아 이렇게 전집으로 나오도록 애쓰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윤택수의 글들이 보석으로 세상에 남게 된 것은 그분들의 노고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