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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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에 출간된 하품은 절판되었고, 나는 2020년도에 특별판으로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겉표지는 반투명한 재질로 되어있어서 제목이 흐릿하게 보인다. 졸릴 때, 시야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준다. 또 ‘하품’에서 ㅁ을 떨어뜨려 놓는 방식으로 제목이 적혀 있기 때문에, 졸려서 몸이 나른해지고 축 처지는 느낌을 잘 살려낸 디자인이라고 생각된다. 정말로 ‘하품’을 발음하다가 하품을 하게 되는 느낌이다.


 제목 ‘하품’이 주는 나른한 느낌과는 달리 소설은 너무도 재미있게 잘 읽힌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반드시 한 페이지에서 한 번 이상 웃게 된다.


“뭘 하고 있나.”

“내 인생을, 응시하고 있는 걸세.”

“못 하는 말이 없군.”


 이 소설은 동물원에서 ‘나’와 ‘그’가 만나 무의미한 말들을 늘어놓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입의 용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동물원에서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동물은 식욕에 충실하기 위해 입을 사용하지만, 인간은 말이나 하품과 같이 생존과 무관한 행위에 입을 사용한다. 정영문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특유의 유머로 가볍게 소화해낸다.

 

 “또 만나세, 오늘처럼, 어제처럼, 어제의 어제처럼, 그 까마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 장소에서, 그 시간에, 그래서 그동안 수없이 했던 얘기들을, 아니면 아직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한 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들을 하세, 할 얘기가 도무지 없을 것 같지만 또 있겠지, 그가 말했다.”


 삶의 시간들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친구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얼마나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까. 쓸데없는 말들만 들어놓아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무의미한 대화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은 우리들의 무의미한 대화로 이뤄져 있으나, 우리의 무의미한 대화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삶은 무의미를 통해 의미로 나아간다. 그게 바로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영문의 소설은 늘 ‘혼자서는 불가능한 삶’에 대해, ‘혼자서 불가능한 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함께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정영문의 소설을 추천한다. 소설을 다 읽고, 우리가 함께 무의미한 말들을 영원히 늘어놓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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