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별아저씨 > 교양은 남이 떠먹여주는 식탁이 아니다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3
최병권.이정옥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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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교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았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대로, 우리에게 교양이란, 학교에서는 전혀 배울 기회가 없는, 다만 부차적인 지적 욕구의 산물일까.

이 땅의 학생들은 교양을 쌓을 시간이 없다. 학교는 수업 시간이 너무 많고, 학생들은 많은 과목을 편식하지 않고 다 소화내야만 한다. 그러나 전세계의 어떤 나라의 학생들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우리 학생들이 과연 투자한 시간만큼의 지식을 산출해 내는지는, 이땅에서 교육 시스템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등교육이라는 것이 다만 대학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고 일단 대학을 가고 나서는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에서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학의 교양과목들은 일찌기 학점을 위한 수업이 된지가 오래이며, 대학교육은 다만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수단이 되지 못하는 교양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문명이 인간의 삶을 대체해 갈수록, 오히려 한 인간의 고유한 지적능력과 자질은 더욱 중요해진다. 개인의 자질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고,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에 더욱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때부터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쓰며 질적으로 우수한 독서를 습관화한 프랑스의 논술문제를 보면, 우리와의 수준이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을 사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의 오랜 중고등 교육 시스템의 고질적인 비효율성과 자생적인 개선의 결여에 우선하겠지만, 대학교육에서도 여전히 타율적이고 근시안적인 학생들 자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이 아닌 우리 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 총 6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에는 바칼로레아에 출제되었던 문제들과 뽑힌 답변으로 이루어져있다. 질문들은 각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내용들이며, 그러하기에 답변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 왕성한 학문적 욕구를 가지고 평소에 꾸준히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결국 일상생활에 체득화된 교양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소리다. 자신의 삶과 지식을 이분화시켜 놓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우리의 일상과 지식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며 삶과 유리된 지식은 그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혹자는 이런 책에서 교양의 정답을 바랄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오랜 타성, 남이 떠먹여 주는 밥상처럼 지식을 받아먹기만 하는 행위의 반복이다. 이 책은 교양문제와 그에 걸맞는 훌륭한 답변을 실었을 뿐이지, 그것이 절대불변의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양의 정답이 있다고 믿는 우리는 그래서 지식을 내면화 시키는데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교과서의 지식이 항상 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달달 외우는 식의 지식이 과연 진정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었는지 상기해보자.

지식이란 자신의 자발적이며 생산적인 사고가 없이는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남의 것을 그저 읽는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모조리 내 것으로 만들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폭식하듯 읽어대도 자신의 사고와 언어로 되새김질하지 않는다면 그저 눈으로만 스쳐지나간 글자들일 뿐이다.

바칼로레아의 질문과 답변들을 통해서, 과연 나의 생각은 어떠할지 한번 써보는 것도 좋겠다.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지식은 글이나 말로 쓸 수 없는 법이다. 그러한 에세이를 통해서 우리의 독서는 방향성을 가질 것이고 교양은 보다 내실을 기할 것이다. 자신이 밥상을 차려봐야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을 알듯이, 교양도 자신이 직접 차리는 식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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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최성민 > 세계의 교양, 그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3
최병권.이정옥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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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경제 사회적 발전 단계가 높지 않은 나라에서는 교육의 중심이 창조성보다는 모방성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 생산 기지인 나라에서는 창조성이 크게 요청되지 않는다. 남이 쥐어준 작업 지시서에 따라 개미처럼 일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소홀히 하는 기능 위주의 교육은 능동자의 교육이 아니라 남의 뒤나 따라가기에 바쁜 피동자의 교육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위와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나는 조바심이 일었다. 위에서 말한 '경제 사회적 발전 단계가 높지 않은 나라'는 몇 년 전까지의 한국을 말함이었고, 지금껏 모방에 치우친 교육이 이루어졌던 것도 결국은 우리나라를 말함이었다. '베끼면 95%는 따라간다. 하지만 나머지 5%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5%는 바로 창의력이다.'라는 학과 교수님의 말도 동시에 귓가를 맴돌았다.

사실 그 동안의 우리나라의 성장의 원동력은 catch-up engineering, 즉 따라잡기에 있었다. 스스로의 역량을 길러 창조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기술을 곧이 곧대로 배워서 그 속에서 약간의 응용을 하는 수준, 그러한 한심한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선진기술의 '국산화의 쾌거'는 우리의 어이없는 자부심을 높여주었고, 창의적인 기초역량을 키우는 데는 소홀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혜택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덮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비단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과학기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 사회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깊은 사색과 고통스러운 성찰, 그리고 창의적 사고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대학입학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기출문제들을 싣고, 그것에 대한 해설을 달아놓은 책이다.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 등 총 6개 분야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들이 나열되고 있는데, 각각의 설명은 그야말로 '놀랠 노'자이다. 사회적, 철학적,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와 교양을 바탕으로 한 해설을 통해 추상적이고 난해한 주제들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교육과정이 토론과 에세이로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끊임없는 독서를 수반하는 프랑스, 그들의 바칼로레아 시험문제를 살펴보면서 나는 그들의 예술적 창조성, 관용(똘레랑스)을 강조하는 그네들의 문화, 모든 문화의 근저에 깔려있는 탄탄한 문화적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입시위주의 교육, 손쉽게 학점을 따려는 대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춘 교양수업들, 어렵고 난해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로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의 '교양'의 어감... 요즘과 같이 정보화, 글로벌 시대에는 수많은 정보가 난무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선택해 창의적으로 재음미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보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에서는 창조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깊은 사색과 고통스러운 독서과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가, 루소가, 위고가, 프로이드가, 그리고 오귀스트 콩트가 말하길...'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다소 난삽하고, 읽기에 버겁다. 한번에 쭈욱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한 챕터씩 나뉘어 조금씩 읽어보자. 읽고 난 후에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난해함과 지겨움을 이겨냈던 자신을 칭찬하고, 읽었던 내용에 대해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통스럽다. 난해하다. 깊다. 완독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면 조금은 변해있는 자신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교양은 '배부른 후에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식사하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삶의 필수 지침목'일 수 있을까? 글쎄, 아직 우리에겐 조금 어렵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에게 '교양'은 사치다. 이 책이 나비의 날갯짓이 북경의 태풍을 불러오듯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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