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최성민 > 세계의 교양, 그 '나비효과'를 기대하며
-
-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1 - 개정판, 종합편, 바칼로레아 논술고사의 예리한 질문과 놀라운 답변들 ㅣ 휴머니스트 교양을 읽는다 3
최병권.이정옥 엮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경제 사회적 발전 단계가 높지 않은 나라에서는 교육의 중심이 창조성보다는 모방성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 생산 기지인 나라에서는 창조성이 크게 요청되지 않는다. 남이 쥐어준 작업 지시서에 따라 개미처럼 일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과 역사와 철학을 소홀히 하는 기능 위주의 교육은 능동자의 교육이 아니라 남의 뒤나 따라가기에 바쁜 피동자의 교육이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위와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나는 조바심이 일었다. 위에서 말한 '경제 사회적 발전 단계가 높지 않은 나라'는 몇 년 전까지의 한국을 말함이었고, 지금껏 모방에 치우친 교육이 이루어졌던 것도 결국은 우리나라를 말함이었다. '베끼면 95%는 따라간다. 하지만 나머지 5%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 5%는 바로 창의력이다.'라는 학과 교수님의 말도 동시에 귓가를 맴돌았다.
사실 그 동안의 우리나라의 성장의 원동력은 catch-up engineering, 즉 따라잡기에 있었다. 스스로의 역량을 길러 창조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기술을 곧이 곧대로 배워서 그 속에서 약간의 응용을 하는 수준, 그러한 한심한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선진기술의 '국산화의 쾌거'는 우리의 어이없는 자부심을 높여주었고, 창의적인 기초역량을 키우는 데는 소홀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혜택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덮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비단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과학기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 사회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깊은 사색과 고통스러운 성찰, 그리고 창의적 사고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대학입학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기출문제들을 싣고, 그것에 대한 해설을 달아놓은 책이다.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 등 총 6개 분야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들이 나열되고 있는데, 각각의 설명은 그야말로 '놀랠 노'자이다. 사회적, 철학적,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와 교양을 바탕으로 한 해설을 통해 추상적이고 난해한 주제들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교육과정이 토론과 에세이로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끊임없는 독서를 수반하는 프랑스, 그들의 바칼로레아 시험문제를 살펴보면서 나는 그들의 예술적 창조성, 관용(똘레랑스)을 강조하는 그네들의 문화, 모든 문화의 근저에 깔려있는 탄탄한 문화적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입시위주의 교육, 손쉽게 학점을 따려는 대학생들의 요구에 발맞춘 교양수업들, 어렵고 난해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로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의 '교양'의 어감... 요즘과 같이 정보화, 글로벌 시대에는 수많은 정보가 난무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선택해 창의적으로 재음미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보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에서는 창조적인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깊은 사색과 고통스러운 독서과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볼테르가, 루소가, 위고가, 프로이드가, 그리고 오귀스트 콩트가 말하길...'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다소 난삽하고, 읽기에 버겁다. 한번에 쭈욱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한 챕터씩 나뉘어 조금씩 읽어보자. 읽고 난 후에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난해함과 지겨움을 이겨냈던 자신을 칭찬하고, 읽었던 내용에 대해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통스럽다. 난해하다. 깊다. 완독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면 조금은 변해있는 자신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교양은 '배부른 후에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식사하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삶의 필수 지침목'일 수 있을까? 글쎄, 아직 우리에겐 조금 어렵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에게 '교양'은 사치다. 이 책이 나비의 날갯짓이 북경의 태풍을 불러오듯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야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