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짧은 소설이었는데도 읽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무언가 쓰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누군가 얘기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또 구절도 정확하지 않지만, 두꺼운 책은 지식을 주고 얇은 책은 영감을 준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잡식성이어서 최근에는 시와의 혼종이 자주 이루어지는 것 같다. 두꺼운 소설을 읽어낼 만큼 시간을 충분히 낼 수 없는 시대에, 어쩌면 그에 걸맞는 진화이기도 할 이 경향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를 읽는 방식으로, 소설을 읽어내기도 해야 한다는 뜻일까.
이 소설은 하이쿠에 대한 소설이면서, 눈에 대한 소설이다. 또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유럽 사람들에게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하이쿠에 대해서는 굉장한 관심이 있는 듯하다. 롤랑 바르트조차 하이쿠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정도니까.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쿠의 3행과 연결되는 것 같다.
1부에서 유코는 눈에 대한 하이쿠를 쓰는데, 색채를 배우기 위해 소세키 선생을 찾고, 그에게서 수업을 듣는다.
2부는 소세키 선생이 무사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무사는 회화, 음악, 시, 서예, 춤을 배운다. 여자의 이름은 네에주이고, 네에주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눈이라는 뜻이다. 네에주는 줄타기 곡예사로, 그녀의 서사가 이어진다. 그녀의 기예에 감명 받아 무사는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결혼하지만 공중에서의 삶을 동경하던 네에주는 마지막 줄타기에서 죽는다. 무사는 예술을 통해서 슬픔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리고 끝내 실명한다.
3부에서는 소세키 선생의 사랑 이야기로부터 유코는 시쓰기가 줄타기의 기예와 같다는 수업을 받는다. 수업을 통해서 유코의 시에는 다채로운 색이 나타난다. 변한 유코는 네에주의 딸의 방문을 받는데, 그녀는 1부에서 소세키 선생을 소개한 시인 뒤에 서 있던 여자였다. 둘의 만남으로 또 한 번 젊은 시인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소세키와 네에주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 것과 달리,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한다. 반복과 변주라는 시의 속성이 이야기 자체로 나타난다.
나는 이 소설의 3부에서 소세키 선생이 한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시쓰기뿐만 아니라 글을 쓴다는 행위의 본질이 드러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언어는 필연적으로 선조적이고, 면을 이룰 수 없다. 화면으로 이루어진 영상과 달리 언어는 선의 방식으로 면을 그린다. 그 제약에서 기예가 필요하고, 그 기예가 수준에 이를 때 제대로 된 모든 쓰기가 가능해진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하이쿠를 통해 들려준 시쓰기에 관한 소설이며, 그 자체로 소설로 쓰인 시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의 예술가 소설이면서, 시에 관한 소설로서 시적인 방식으로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3행의 하이쿠로 표현하자면 이런 식이 될까? 하이쿠에 대한 소설이었고, 그 자체로 시적인 소설이었으니 이런 식의 표현으로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눈의 시인
무사의 사랑에서
색채를 배우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