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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치GO 박차GO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장정희 지음 / 우리학교 / 2015년 7월
평점 :
수시원서를 쓰면서 고3생들에게 네 꿈이 뭐냐고 물어도 70프로 정도는 묵묵부답이다. 이루어 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꿈이 없다는 것, 하다 못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 이것이 현실이다. 여름방학,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액정 앞에 매달려 땀을 비질비질 흘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장정희 작가의 ‘빡치Go 박차Go’를 권해주겠다.
소설은 ‘국악(國樂)’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대금을 부는, 지방의 국악고등학교 학생 준우. 준우에게는 확실한 꿈이 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이 되는 것. 그만한 실력도 있다. 번듯한 지원세력, 가정도 있다. 친구도 있다. 그러나 삶이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면 소설이 왜 생겨나겠는가. 소설을 만드는 것은 탄탄대로가 아니라 장애요, 험로(險路)요, 우여곡절이다. 이 우여곡절을 어떻게 이겨나가는지, 그 분투와 초극의 과정을 실감 있게 그려내는 데 성장소설의 재미가 있다. ‘빡치Go 박차Go’는 그 재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성장소설로 분류될 수 있겠다.
예술고 국악과 아이들의 꿈은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인정받아 ‘재비’, 명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재비’는 국악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기능자를 이르는 말이다. 소설은 국악고 아이들, 이른바 ‘새끼재비’들의 욕망과 우정과 사랑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국악에 대한 감성과 지식은 그저 생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직접 자신의 새끼(아들)을 대금을 부는 국악고 학생, ‘새끼재비’로 길러본 부모로서의,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는 그 대로 녹아들어 있다. 이 소설의 진정성은 작가로서의 진정성에서 온다기보다는 부모로서의 진정성에서 온다. 묵직하고 느껍다.
아래는 소설에서 빌려온 구절이다.
-우리는 서로의 틈새를 장단으로 가려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귀신 같이 알아차려 추임새로 덮어 준다.
-기꺼이 버티는 사람과 억지로 버티는 사람의 차이.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
-내게는 모든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전공생이 아니기에 부담 없이 즐기는 거다. 그런 음악도 경쟁하고 비교하며 순위를 매기는 순간, 행복은 멀리 달아나고 말겠지.
-- 서울 배문고등학교 김보일.
-우리는 서로의 틈새를 장단으로 가려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소리가 나지 않을 때면 귀신 같이 알아차려 추임새로 덮어 준다. -기꺼이 버티는 사람과 억지로 버티는 사람의 차이.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 -내게는 모든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전공생이 아니기에 부담 없이 즐기는 거다. 그런 음악도 경쟁하고 비교하며 순위를 매기는 순간, 행복은 멀리 달아나고 말겠지.
- 노샘은 나를 가리켜 ‘지방촌놈’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서울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지방천민’에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길은 서울에서 시작되고 서울에서 끝나버릴 뿐, 떡고물 하나 지방에 떨어지는 것은 없다. 문화적인 행사만 봐도 그렇다. 변변한 무대에 출연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공연 하나 감상하기 힘들다. 그러니 길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겠지.
- ‘만인을 즐겁게 하는 악기는 속이 비어 있지 않은가!’ 그의 말이 서럽고 아름다워 울었다. 꿈에서 깨고 보니 눈물이 볼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속이 비어 있는 법이다!’ 대금 제작 체험에 참가했을 때 제작 명인이 했던 말이기도 했다. 두건을 쓴 명인은 칼날에 거칠어진 손으로 취구를 가리키며, 대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속을 비워내는 일임을 힘주어 설명했다. ‘내경(內徑)’이라 하여 ‘소리의 길’을 내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대금연주자 또한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찬 내면을 비워내야만 아름다운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하겠다면 뭐 먹고살려고 그러냐며 타박해. 잘 먹고 잘사는데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공부에만 목숨 걸라고 해. 병신 같은 새끼들이!"
뭐 서연이 저만 입시생이냐? 혼자 괴로운 척 똥폼 다 잡고 있네. 그건 그렇고, 어때? 여행은 잘 갔다 왔어? 어디로 갔어?"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앞에 놓인 잔을 들어 한입에 들이붓는다. 불길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후끈하다. 오징어다리를 잘근잘근 씹고 있던 대호가 끼어든다. "야, 그 말 나온 게 언젠데 지금까지 꽁하고 있었대? 하여간 여자들은 놀라워." 대호의 말에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승원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한다. "나는 서연이 마음 이해해. 우리가 뭐 공부 잘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실기가 생명인 우리들한테 재능 없다는 식의 말은 사형선고야." 승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호가 냉큼 말을 받는다. "야, 그 말은 나도 들어서 아는데, 그런 정도는 친구이자 같은 전공자끼리 나눌 수도 있는 충고 아니냐?" 그러자 승원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야, 이 새끼야! 충고는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게 예의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불시에 날아오는 게 칼날이지 충고냐?"
"네가 이 따위로 무너지다니 말이 되냐고……!" 연지 선배는 말끝을 맺지 못한 채 울먹이고 만다. 그러자 울컥 내 눈자위가 뜨거워진다. 눈물이 솟구칠 것만 같다. 조금씩 사위어가는 오후의 햇살. 소나무 이파리마다 바늘처럼 뻗어 내린 고드름만이 햇볕 속에서 뚝뚝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기다렸어. 내 예종 합격이 네 덕분이라고 말해줄 그 순간을. 술과 폭력밖에 몰랐던 아버지 밑에서 오직 집을 떠나는 것만이 목표였던 내게 오기본능을 일깨워준 사람이 너였으니까."
연주자들에겐 침묵의 순간이 가장 두렵다. 자신에게만 온 이목을 집중시킨 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의 눈빛 속에서, 연주자는 무대라는 우주에 남겨진 미아처럼 두렵고 막막하다. 그 막막한 허공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음악뿐, 침묵을 침묵답게 대접해주는 방식은 오직 제대로 된 연주뿐이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오감으로 파고드는 것은 관객과의 교감. 그리하여 연주자에게 오직 하나의 화두만 남는다. 침묵이라는 허공에 어떤 수를 놓을 것인지. 천변만화의 바늘을 따라 어떤 무늬를 그려낼지. 물론 예측할 수는 없다. 오직 혼신의 연주만이 나를 데려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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