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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아파트 ㅣ 시 읽는 어린이 27
김영미 지음, 심보영 그림 / 청개구리 / 2009년 5월
평점 :
김영미 시인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고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199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에 소설이 입선되었으며 2009년 황금펜아동문학상(동시 부문)을 받았고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동시부문)에 당선했습니다. 현재 광주 이현어린이집 원장이며 지은 책으로 그림책 『다른 건 안 먹어』 『내가 안 그랬어』가 있습니다. 나의 글쓰기 20년 도반이기도 합니다. 항상 다소곳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시 또한 그의 인격과 마음처럼 따뜻해서 누구에게든 권해주고 싶은 동시집입니다. 동시는 아이들만 읽는 시가 아니라 아이들부터 읽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린 우리의 동심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재개발 아파트
(김영미 2008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날마다
옥수수 이 빠지듯
불 꺼진 창이 늘어간다
관리실 아저씨는
떠나간 집마다
커다랗게 검은색으로
X 를 그린다
이제 통로엔
딱 우리집
하나 남았는데
갈 곳을 정하지 못해
날마다
조바심하는 엄마
처음으로
나는 커다란 X 를
받고 싶었다
양파 아줌마 / 김영미
양파 아줌마는 말예요
지렁이, 두더지...
땅속 친구들
상담사였대요
그 많은 고민
다 들어주느라
한 겹
한 겹
온몸이 자꾸 두터워졌대요
양퍄 아줌마 곁에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잖아요?
그건
땅속 친구들
아픔을 대신 앓는
착한 마음 때문이에요
갯벌 / 아줌마
바다 생물들
썰물 때면
받아쓰기 한다
암호 같은
뽕뽕 언어로
열심히 쓴다
그런데 틀렸나?
심술쟁이
말물 지우개가
빽빽이 공부한 칠판을
슥슥, 지운다.
야, 단추 잠궈! / 김영미
시냇물의 투명 코트가
바람에 펄럭
벌어진 앞섶으로
물고기들 자꾸
장난치며 튀어 오른다
해님이
-그러다 감기 들라
야 빨리 단추 잠궈!
징검다리 단추가
꼬옥꼭 옷깃 여며 주는데
돌아가신 엄마 생각
추운 날 아침
코트 단추를 채워 주며
-감기 조심
내 볼을 토닥이던
엄마가 많이 보고 싶다.
새가 공중에서 똥 누는 이유 / 김영미
찌직!
공중에서 새가
똥을 눈다
우리가 사는 집을
화장실로 아나?
아니야!
작은 몸으로 높이 날기 위해
최대한 몸무게를 줄이는 거래
그러니까 이빨도 없고
뼛속도 다 비웠겠지
아하,
날기 위해서는
온갖 욕심도 버리고
마음까지도
다 비워야 하는구나.
고구마 / 김영미
우리 가족 모두
손잡고
손잡고
주말 농장에 갔어요
고구마 넝쿨이
너울너울 일어서며
우리를 반겨 주었어요
나도 반가워
밭이랑으로
달려가
고구마 캤지요
아빠 고구마를 캐니
엄마 고구마
아기 고구마
줄줄이 따라나와요
고구마 식구들은
땅속에서도
날마다 꼬옥
손잡고 있었나 봐요.
시험 보는 날 / 김영미
시험 공부 한다고
밤잠 설친 날
창문 가득
새벽 안개가 몰려와
숨바꼭질 하잔다
앞산도
길 건너 방죽도
아른아른 다 숨겨 놓고
키 큰 붓꽃도
키 작은 채송화도
새벽 안개 속으로 숨는데
학교 가기 싫은 날
나도 안개 속에
꼭꼭 숨고 싶다
재촉쟁이 봄 / 김영미
봄이 얼마나
재촉쟁이인가 알겠어
봐, 봐!
목련이
하연 속옷 바람으로
허겁지겁 피어나는 거
털복숭이 버들강아지
맨몸으로
부르르 떠는 거
봄아, 봄아
조금만 기다려
아직도 춥잖아?
섬 / 김영미
섬이
외로워도
아무 불평 없이
저렇게 떠 있는 건
날마다
파도가 놀러 와
발가락 간질이며
놀아 주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