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 - 장정희 장편소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장정희 지음 / 강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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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멸의 아이,

조선중기. 어지러운 세상 속, 서녀로 태어나 소실로 살아야 했던 비운의 여류시인. 옥봉(이숙원)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녀의 전부이자 모든것이었던 시(詩) 에 관한 이야기를 존경하는 장정희 샘의 펜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보는이의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 역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그 시절 정세를 살필 것이고. 문학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그녀의 작품을 읽는 재미에 취할 것이며. 단순히 열애사로 읽더라도 충분히 애절하고 달달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다소 과장된 해석일지라도) 페미니즘을 읽었다.

권세와 신분, 남녀의 차이가 유별한 시대에 태어나. 일평생 비극의 삶을 맞았지만.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그저 호락호락 하지만 않고.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줄 알았던 여인. 실현가능한 진보를 행함에 있어 무척이나 용감했던 여인. 모두가 재앙이라 하였지만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문학을 향한 열정. 지조. 자존심.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p82
남자는 안의 일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밖의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남녀의 법도라고 일갈한다. 게다가 혼사란 뭐란 말인가. 여자를 비 오는 날 남의 집 처마에 깃들어 비를 피해 살게 하리라는 명분이지만, 온갖 집안일을 떠안겨 도맡어 처리할 일꾼을 들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위로는 조상을 받들게 하고 아래로는 후사를 잇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사람이 어찌 필요할 때만 밝히고 필요 없으면 불을 끄는 호롱이란 말인가. 여자가 시문으로 남자들과 겨루는 것은 신세만 곤곤하게 만들 뿐이라고? 그렇다면 여자는 남자와 똑같이 어미의 배 속을 빌어 태어난 생명체가 아니란 말인가.

p311
시를 쓰리라! 내 삶을 조문하기 위해. 오직 나에게 바치는 글이어야 하리. 어차피 시와 함게 다 할 삶. 더는 부질없는 기약에 매달리지 않으리. 다시는 애걸하지 않으리. 내 삶을 증언하기 위해서 나는 쓰리라. 서녀로서 첩실로서 온전하지 못했던 내 삶에 온점 찍어주기 위해 기어이 써야만 하리.

그녀의 슬프고 애잔한 삶을 엿보다보니. 그녀에게 없는 어머니란 존재, 아이의 존재가 못내 아쉬워졌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에게는 아이가 있다.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빛날. 그녀가 낳은 수많은 시(詩)들이 그녀의 아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있다. 이야기의 매 순간마다 그녀를 따뜻하게 보듬아주던 보이지 않는 시선. 작가 장정희샘이 그녀의 어머니다. 작가를 통해 옥봉, 그녀가 다시 세상에 태어났다. 넘치는 사랑과 넘치는 위로를 받으며. 2020년, 비로소 옥봉이 행복하게 웃을 것만 같다.

끝으로, 그녀의 대표작이자. 개인적으로 매우 감명깊게 읽었던 옥봉의 시편을 남기며 부족하지만 정성을 기울여 쓴 후기를 마칠까 한다. 아울러 훌륭한 이야기를 전해주신 작가 장정희샘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전하며. 언젠간 꼭 한번 뵙기를 소망한다.^^

夢 魂 
(몽 혼) 꿈 속의 넋

近來安否問如何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찌 지내시나요?
창가에 달빛 비치면 가슴속 한이 넘쳐납니다.
꿈속의 내 몸, 발자욱을 남기게 했다면
그대 집 앞 돌길이 반은 모래가 되었을 거예요.

by mira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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