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길 자체가 되기 전에는 그 길을 따라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긍정의 길이든 부정의 길이든 자신이 선택한 길과 하나가 되어묵묵히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모든 길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미국 시인 찰스 부코스키는 썼다."무엇인가를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 그러면 너는 너의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싸움이다."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으리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글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상처는으리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준다.도아보면 내가 상처라고 여긴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 삶의 그물망 안에서 그 고통의 구간은 축복의 구간과 이어져 있었다. ‘축복blessing‘은 프랑스어 ‘상처 입다blesser‘와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엄마가 되면서 개인적 관계들이 끊어지고 사회로부터 배제되 가정에 유폐된다. 게다가 아이를 위한 것들만 허락된다. 아이를 의회 기간 강경 · 에너지 · 돈을 써야 하고, 아이를 매개로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엄마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면 엄마의 가격을 의심 받는다.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가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강보배내옷소금눈얼달쌀파도백목련흰 새하얗게 웃다.백지흰개백발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