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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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여성의 권리문제가 처음으로 사회적인 논의 대상이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1792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는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통해서, 여성에게도 남성에게 부여되는 것과 같은 평등한 기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후 여성들은 사회에 만연해있는 남성주의적 지배 권력에 의한 여성 차별을 의식화하고 그것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억압받고 배제된 여성의 권리를 확장하는 여성 해방 운동은 약 200년 동안 지속되었고 오랜 노고 끝에 많은 성과를 일궈냈다.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학교에 들어가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전과 견주어볼 수 없을 만큼 호전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200여 년간의 저항운동과 그 결과로서 일궈낸 여성인권의 향상은 가부장적 사회의 탈피와 완벽한 여성 해방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아직 우리의 사회에는 개선되어야 할 영역들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는 여자와 한 하지만 잘해도 되는 남자의 탄생)은 이와 같이, 여성의 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된 우리 사회에서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는 차별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만나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대하여.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아버지는 이전 세대에 견주어 보건데 보다 가정적임에 확실하다. 그들은 전보다 더 많이 가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성 배우자와 함께 아이를 양육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잊곤 한다. 여전히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깊숙이 가정에 얽매이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경제적인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말이다.

 

사실 여성과 가정이라는 쌍은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익숙한 그림이다. 아버지가 밖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어머니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우리 사회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보통의 평균적인 가정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머니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또 기저귀를 갈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교육열을 불태우는 이미지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모성이라는 단어로서 논하고 있는데, 이때 저자는 모성이 가지고 있는 어떤 기만성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인다. 모성은 아이를 낳는 여성이라면 천성적으로 가지게 될 본능이라고 믿어지는데, 사실 그것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으며 사실 아이를 키우면서 학습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즉 여성이 아이를 더 잘 키운다는 믿음은, 여성에게만 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주어졌기 때문에 형성된 것에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에게 생물학적 본질주의에서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여성이 원래 집안일을 더 잘할 수밖에 없다는 전언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남자, ‘그러한여자는 없다. 여성보다 남성이 보다 목표를 성취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보다 세심하거나 다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일의 추진력이 좋거나 또 맡은 바 일을 더 잘 완수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성 역시도 남성보다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는데 능한 것이 아니고 억척스럽거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수줍고 나서는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와 같은 기대를 하는 사회적 시선에 따라, 그와 같은 규범들을 다년간 학습하게 되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따르는 기대에 충족하는 인간형이 된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도식을 대물림한다면, 결국 여성이 잘 배워서 전문직 자리를 잡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고 해도, 결혼과 아이의 탄생과 함께 집과 가정에 복속되고 더 나아가서는 남성의 경제권 속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와 같은 암묵적 동의를 해체해야만 한다. 그것이 귀중한 생명을 돌보고 가정을 수호하는 고결한 여성이라는 찬탄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성도 여성과 같이 아이를 세심하게 돌보고 집안일을 잘 해낼 수 있으며, 역으로 여성 역시도 그렇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로 보아야만 하지 성별 차의 문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은밀한 차별을 자신의 개별적인 경험을 들춰냄과 더불어 100명의 엄마들을 인터뷰하면서 구체화한다. 남편과 비슷한 위치에서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왜 여성들은 그들보다 더 가사와 양육에 얽매이게 되는지, 그 실태와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생물학과 신경과학,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진 최신 연구 사례를 통해서 면밀하고 섬세하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사고와 그 오류를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든 생각은 나의 남편이 될 사람 혹은 나의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남편이 될 사람에게 꼭 이 책을 읽게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많은 경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지적하다시피 어떤 누가 자신에게 암묵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그와 같은 은밀하고도 달콤한 권력을 선언하고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올바른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와 동시에 조금 좋은 세계로 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 이 서평은 교보북살롱을 통해서 책을 수령 후, 전문 서평단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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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20.11.13)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삶 속에서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정서적, 신체적 상흔일 수도 있고 혹은 알지도 모르는 사람에 의한 급작스러운 공격 또는 남의 고통에 대한 직간접적인 자신의 죄의식일 수도 있다. 생의 한 가운데 뚫린 그 상처는 되돌릴 수 없기에, 치유되지 못하고 덧나고 곪아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힌다.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는 그와 같은 상처로 아파하는 당신들을 위한 책이다. 밀려오는 상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마는 당신들을 위한 책.

 

콜크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회복능력이 우수하여 상처들로 금방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파하면서도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끔 어떤 상처들은 감당하기에 너무도 비대하여 회복될 수 없는데, 그와 같이 되돌릴 수 없이 깊게 패인 상흔을 정신적인 외상 또는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트라우마는 지속적으로 상처의 시간으로 회귀하고, 선형적인 시간 속에서 구성되는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자신을 만드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외부환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정신건강이라는 화두를 생각할 때면 우리는 쉽게 약을 떠올린다.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 및 여러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환자들에 있어 약물 치료는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치료는 임시적인 고육지계일 뿐, 실질적인 치료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콜크는 이 책을 통해서 상기시킨다. 그는 정신을 담당하는 뇌와 감각을 받아들이는 물리적인 몸 사이의 상관관계를 끊임없이 해명하면서, 정신에 입은 상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을 들여다보고 바로 그러한 몸으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콜크는 여러 이론적 사실과 실례적 연구들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정신을 통제하는 방식을 입증한다. 예컨대 우리의 뇌 중 우측에 존재하는 정서적 뇌는 신체를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속이 뒤틀린 기분이나 혹은 호흡이 빨라지고 심장이 쿵쾅되는 것 등의 신체 움직임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신체적인 반응이 과잉되는 경우, 외부 세계를 적절히 감각하지 못하고 또 반응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역으로 우리가 신체를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 역시도 잘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여러 신체적인 해결책들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마무리 한다. 내면가족체계, ENDR, 요가, 언어, 뉴로 피드백 등 여러 치료책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신체적인 안정을 통해서 상처를 천천히 대면하고 그것을 통합된 자기의 소관 아래에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때 자신을 통해서 상처를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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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유니버스를 여행하는 과학 이야기 - ‘쥬라기 월드’ 공룡부터 ‘부산행’ 좀비까지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전홍식 지음 / 요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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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공상 과학 장르의 작품들을 마주할 때 먼저 공상(空想)과 마주하게 된다. 공상은 그 의미를 풀어 해석하자면 비어있는 상 또는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보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예컨대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신 SF 영화 <테넷>은 양자역학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과학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관객인 우리는 그와 같은 영화적 상상이 참신하고 그럴 듯하지만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상 뒤에 오는 과학이라는 말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공상 과학은 비현실적인 상상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비현실적인 동시에 현실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상 과학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서 특이점을 맞이하게 되고 <테넷>과 같이, 인버전된 물질을 통해서 시간을 반복할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게 된다면? 또는 <인터스텔라>와 같이 인간이 블랙홀을 지나 차원의 문을 열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래서 세계가 지금과 달라져, 보다 혼란스러워지거나 또는 살기 편해질 수 있다면? 공상 과학에서 일어나는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일들이 아주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SF 유니버스를 여행하는 과학 이야기>의 저자는 공상 과학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간과해서 는 안 되며, 그와 같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상상들은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말한다. 예컨대 오래전의 과학적 공상, 밀랍으로 새와 같은 형상의 날개를 만들어 사람의 팔에 연결하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랜 시간 동안 점진적인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결국 현실화가 된다. 날개 상하의 기압차를 통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사람이 난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되는 공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상을 토대로 과학적 상상들이 발현되고, 과학을 통해서 현실로 구체화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상상이 또 다른 상상을 낳고 그것이 과학과 만나게 되면서 우리의 미래가 완성된다고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면에서 SF는 우리를 이끌어주는 열쇠이자, 미래를 엿보게 하는 거울이며, 안 좋은 미래를 피하게 도와주는 경고등이. 따라서 우리는 공상 과학을 다만 비어있는 상상으로만 다가가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언젠가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는 유의미한 상상으로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의 주제와 그에 관련한 개별적인 SF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과 상상에 대하여 답해주고 있다. 그 주제들은 실제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소재들로, 유전공학, 인공지능, 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유전공학을 다루는 장에서 저자는 <더 문>을 예로 들어 유전자의 복제를 통한 복제 인간 만들기가 가능해질까와 같을 질문을 던진다. 어느 정도 선에서는 가능하고 또 어느 정도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체적인 복제는 가능하지만 기억의 복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는 아무리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마주하는 상황이 달라진다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할 수 있는 과학적 미래뿐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현실화된 과학도 놓치지 않는다. 예컨대 저자는 <아이언맨>을 통해서 로봇 슈트-강화복이라는 기술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며 또 어떤 목적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하여도 논하고 있고, 1980년대 인기를 누렸던 미국 TV 드라마 <전격 Z작전>의 예를 들어서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율 주행 차량이 현재 어느 정도까지 현실화가 되었는지 이야기 해준다.

 

  더욱이, 이 책의 묘미는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저자의 칼럼에 있다. 이 칼럼은 주제에 관한 다양한 현실적인 논의들을 더해줌과 동시에 앞에서 논의된 글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보다 체계적이고 깊은 지식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본인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칼럼은 3장 멸망하는 세계, 인류가 만든 재앙의 코로나 19와 전염병의 역사이다. 저자는 알렉산더의 열병으로부터 시작해서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에 걸쳐 코로나로 전개하면서 전염병과 과학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자세히 풀어준다. 이렇듯 책은 굉장히 시의적인 문제들을 밀도 있게 다루면서 현재 우리네 삶과 과학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글은 교보북살롱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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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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캇시러에 따르면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를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인간 그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인간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인간적인 상징들이 포함된 문화들로써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리란 말이다.

 이 책도 그러한 생각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저자 유현준 건축가는 문화의 최종 결정체인 건축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삶을 해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그러한 인간들이 또 다시 어떻게, 새로운 문화를 이어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지금의 문화 태피스트리가 지어진 첫 지점으로부터 시작해서 선형적인 시간의 선을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명명되는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를 섬세한 눈으로 되짚으며 따라간다.

이 책은 건축 뿐 아니라 역사, 예술, 과학 등의 여러 가지 지적 분야들을 아우르고 있다. 지리학적 기후로부터 시작해서 피타고라스와 기하학, 노자의 비움 사상, 나일론과 황하 강의 차이, 삼각돛의 발명, 몬드리안의 추상화, 콜더의 모빌 등 다채로운 인문학적 지식들을 도원하면서 건축과 문화, 인간의 상관관계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삶은 늘 어떤 공간 속에 놓여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공간과 유기적인 작용을 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벽이 아닌 기둥을 중심으로 발달한 동양의 건축은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의 경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은데, 이와 같은 공간은 집단의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동양 사회와 연결되고 있으며 반대로 벽을 중심으로 발달한 서양의 건축은 외부와 내부가 닫힌 공간으로써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와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물론 그 역도 그러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공간이 우리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 책은 다채로운 지적 향연을 통해서, 건축과 문화, 인간에 대한 촘촘한 직조물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공간과 그 속에서의 삶을 재고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리는 어떠한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공간이 나를 더 발전적이고 보다 나아간 삶으로 인도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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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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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뒤를 돌아볼 때면, 어떤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 아귀가 맞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들. 알고 싶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으므로 알 수는 없는 그런 순간들. 어렸기에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일들. 작은 동네는 바로 그 과거의 미스터리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내가 살았던 그 동네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 너머에 자리하는 불편한 무언가로부터.

 

  소설의 화자는 자신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던 한 배우의 사라짐을 통해서, 삶의 균열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균열은 오래간 연락을 끊고 살아왔던 아버지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현재 자신을 괴롭게 하는 무언가가 이전에 아버지가 말하고자 했던 중요한 이야기속에 있으리라는 불가해한 직감으로부터 그렇다. 그러면서 화자는 과거 아버지와 어머니와 단란하게 살았던 과거로 부지불식간에 빠져든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동네, 동네의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는 부모님, 화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려고 하는 어머니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시내로 출근하는 아버지. 동네와 가정의 삶 사이의 괴리감으로부터 촉발하는 어떤 긴장감.

 

  이 책은 그 긴장감의 근원을 숨겨 놓은 채, 그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을 펼쳐놓으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책의 마지막, 모든 괴리들을 한데 결집시키는 무언가를 드러내기 이전까지 독자들은 몇몇 징후들을 통해서 흐릿한 윤곽을 맞출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에 존재하는 이 반전은 화자의 삶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모시킨다. 거짓과 실제가 서로를 봉합하면서. 이후로 글이 진행되지는 않지만, 이전에 있던 모든 일들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도록 만듦으로써 또 다른 소설의 세계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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