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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2 세트 - 전2권
고이시 유카 지음, 현승희 옮김, 신쵸사 협력 / 서교책방 / 2026년 7월
평점 :
편집자를 준비하며 출판학교에 다니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마침 초교를 마치고 인생 첫 교정지를 받은 참이고, 이제 2교를 보기 시작한 입장에서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일본 유명 출판사 신쵸사 교열부를 취재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에피소드형 만화 시리즈이다. 다양한 연차의 교열부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책 만드는 과정을 교열 업무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교열校閱, 문서나 원고의 내용 가운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치며 검열함. 책 만드는 일에 발을 담그면서 글을 손보다가 막히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들어가서 이 단어를 검색해보곤 했다. 쓰인 문장은 변함이 없지만 계속 바라보고 있다 보면 교열의 이치를 깨칠 수 있을까 싶어, 단어의 주술적인 힘에 기댔던 것이다. 한자를 하나씩 떼어놓고 의미를 풀이해보면 '비교하고 검토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초교 교정지와 재교 교정지를 비교하면서 수정 사항이 잘 반영되었는지 살피는 적자 대조에서 '비교'의 뜻이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몇 달 간 배웠던 내용을 비교하고 검토했다. 편집자가 교정교열을 담당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교열부와 편집부가 따로 있는 시스템인 만큼 세부는 다르더라도 출판편집의 대원칙은 어느 나라든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특히 1권에서 방대한 사전을 보유하고 또 새로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2권 첫 에피소드는 '사전에 절대는 없다'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구성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제1의 기준으로 놓고 교정교열하는 한국의 출판계와 달리 일본은 교정교열에 여러 가지 사전을 활용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글이 지닌 성격에 따라 표현의 허용 범위가 넓은 사전과 오용에 엄격한 사전 중 활용하는 사전이 다르다. 책에서는 작가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고 연필을 넣지 않기 위해* 작가와 어울리는 사전을 고른다고 한다. 이런 세심함이 다른 책과 차별화된, 백 년을 살아남는 책을 만들어 주는 거겠지. (*연필을 넣는다: 교정교열을 할 때 바로 수정해야 하는 부분은 빨간 펜으로, 저자에게 제안이나 질문해야 하는 부분은 연필로 표시한다. 즉 연필을 넣는다는 건 저자에게 연필로 제안을 넣는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작가의 성향에 맞추어 사전을 달리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전은 언중의 언어생활을 곧바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어의 최전선이 아니라 최후방이다. 하지만 편집자는 언어의 최전선에서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다."
세 달 가까이 반복적으로 들은 가르침을 종합하자면 이렇다. 사전에만 매달려서 기계적으로 교정하는 건 책 만드는 사람의 책무를 다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 가르침을 다시 되짚어 볼 만한 에피소드가 이 다음에 이어진다. 교열부 4년차 단자와 씨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싫어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데다, 편협하고 고지식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다. 어느 날 단자와가 담당하는 책의 외부 교열자(책에서는 외교자 라고 한다.)가 작품이 성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정을 권하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은 단자와는 주인공이자 선배인 쿠쥬 씨와 상의해서 외교자를 만나보고 이 편지를 편집자에게 전달하기로 결심한다. 작가의 의도를 훼손하는 방향일 수도 있고 편집자와 마찰을 빚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다. 작품의 구조나 플롯이 세상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고 '검열'하는 것도 교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외부 교열자에서 사내 교열자로, 사내 교열자에서 다시 편집자와 저자에게로 전해지는 치열하고도 지난한 소통 과정은 정말로 외교(外交)적이었다. 교열부라는 알을 깨고 나와 협상 테이블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단자와의 모습에서,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과 함께 언어의 최전선에 선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엿볼 수 있었다.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에서도 책이 여전히 가치를 지니는 건, 언어의 역사를 존중하되 변화하는 시대를 그 안에 담아내려는 노력 덕일 것이다. 이제 교정지를 보다가 막힐 때면 표준국어대사전에 교열을 쳐보지 않아도 된다. 사전 대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볼 것이다. (일본어를 알았다면 조금 더 적확하게, 깊이 읽을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건 언어 공부를 할 동력이 되기도 했다.)
한편 이 책의 교열이라는 업무를 성실하고 진지하게 전달하면서도 캐릭터가 살아 있고, 순수하게 재미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오탈자가 무엇인지 아는가? 성서에 적힌 모세의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not commit adultery)'는 계명에서 'not'을 뺀 '간음하라(commit adultery)'이다. 그 밖에도 '모종의 정사로 출간이 늦어'진다든가, '괴물' 대신 '대물'로 표기되어 잘못 나온 책의 사례들이 이어진다.
출판계 사람들만 공감하고 끝나기에는 빛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쿠쥬 씨가 전하는 이 '수수하지만 굉장'한 이야기에 함께 빠져 보시라.
*본 게시글은 서교책방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