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윤진현 교수의 연구 인생이 시작된 계기부터 거쳐 온 과정, 그리고 현주소를 보여주는 에세이이다. 동시에 그의 연구 분야인 동물복지, 특히 양돈 농장의 돼지들에 대한 복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대중교양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핀란드 등 해외의 선진 양돈 농장을 경험하고 그곳에서 연구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통해 기존의 관행 농장이 가진 문제점을 설명하고, 우리나라 축산 농가의 실정에 맞게 자신의 연구 성과와 배운 지식들을 적용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나라에도 동물복지형 농장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이 농장들을 직접 소개하며 농장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또한 알리고 있다.
관행 농장은 몸집이 큰 돼지들을 스툴이라는 철 울타리에 가두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분뇨를 흘러가게 만들기 위한 슬릿 구조(바닥이 뚫려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어미 돼지가 출산 전 본능적으로 행하는 둥지 짓기를 막는다. 또한 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들을 분리시키는 '이유' 과정을 빠르게 진행하는 등 결과적으로 돼지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일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어 생산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농가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돼지들은 생후 3일이 채 되지 않아서 진통제 없이 거세를 진행하고, 꼬리 물기 행동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새끼 돼지 때부터 꼬리를 자르는 등 끔찍한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
한편 이러한 방식으로 출하된 돼지들은 동물복지형 농장의 돼지들에 비해 활동량이 적고 건강하지 못해서, 전염병 등에 취약하다. 그리고 이를 항생제 등 약물을 통해 해결하려는 관행은 소비자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돼지, 닭, 소 등 축산 농장의 가축들은 인간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유전체가 일치한다. 또한 신진대사 구조나 미생물군집의 분포도 매우 유사하므로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 등 질병을 일으키는 많은 병원체가 서로 간에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가축들이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에 노출되면 항생체 내성균, 즉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 슈퍼 박테리아는 인간에게도 발달, 전이, 확산될 수 있다. 항생제 내성 전염병은 코로나19 이후 다음 팬데믹을 불러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농장 구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 관행 농장에 대한 우려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동물 복지의 개념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복지는 '조율'과 '향상'이라는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복지 조율이란 동물이 경험하는 불쾌한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물복지를 조율한다는 것은 이미 동물에게 복지 문제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중략) 복지 조율은 복지 문제를 야기하는 요인들을 발견하고 그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 조율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완화하는 데 그칠 뿐, 긍정적인 요인을 향상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복지 조율은 본문의 설명처럼 이미 있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사후적 조치로, 다소 한계가 있다.
복지 향상은 복지 조율에서 다루지 못한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동물의 복지 수준을 향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스트레스의 부재가 아닌 실질적으로 좋은 복지 상태를 의미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을 동물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지 향상 개념이 함께 도입되어야 한다. 최적의 환경에서도 동물들은 여러 이유로 부정적인 감정을 겪을 수 있고, 적절한 보상이 언제나 긍정적인 감정을 생성하지도 않기 때문에 농장동물의 좋은 삶,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저자는 관리자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복지 조율과 향상 양자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농장동물의 좋은 삶을 보장하기 위해 관리자는 동물의 자연적인 습성을 이해하고 야생에 비해 인위적이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대한 동물이 겪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첵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도형을 이용해서 웃는 돼지를 형상화한 표지 디자인과, 장이 바뀔 때마다 각 장을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내지마다 웃고 있는 것처럼 형상화된 돼지 꼬리이다. 그리고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저자의 학부생 시절, 저자가 처음 양돈 농장으로 실습 나갔을 때의 풍경을 묘사한 초반부가 잊혀지지 않는다. 인기척에 겁을 먹고 한쪽 벽으로 우르르 도망치고, 큰 소리로 울부짖는 돼지들의 모습과 지독하게 풍겨오는 악취 등이 말이다. 돼지들이 인기척을 느끼고도 겁을 먹지 않고, 온전한 꼬리를 가지고 웃으며 생활할 수 있는 동물복지형 농장이 자리잡기를 염원하고, 그를 위해 소비자로서 비인간 존재들의 좋은 삶에 대한 고민과 인식을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따르는 과제들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면,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이 책의 안내를 참고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