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종종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에는 종종보다 조금 더 자주, 그 전보다 더 멀리 떠나는 상상을 한다. 도피처는 파주였다가 제주도였다가 독일이었다가 아득히 먼 우주가 되기도 하는데, 잊고 싶다는 마음이 잊혀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뀔 때 더더욱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고립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시인과 다르게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한다. 그런데 점점 사랑할 이유가 떠나거나 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시인이나 작가들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할 때, 괜히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문보영 시인이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 조금씩 외로워졌다. 그가 떠나간 한국은 지금보다 더 쓸쓸하고 슬플 것 같다. 나도 슬픔을 못 이기고 언젠가 나만의 진짜 들판을 찾아 떠나게 될까?
이 각박한 도시가 들판이 될 수는 없을까? 들판은 이 삶의 반대편으로 가야만 존재하는 걸까? 고립되는 동시에 함께하고, 잊고 잊혀지는 동시에 기억하고 기억될 수는 없을까? 그런 물음들이 남는다. 들판은 위로와 외로움을 동시에 가져다 주는구나. 떠나기를 결심하지 못하고 삶을 영위할 당분간의 나에게 이 책은 작은 들판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