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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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봄이 왔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진짜 불행한 사람"이라는 띠지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매도당하는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기에, 약간의 편견을 담보처럼 달아놓고 이야기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막 읽기 시작했을 때의 인상을 말하자면 이렇다. '문장은 퍽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썩 친숙하지 않은 유형의 인물들 뿐이다.' 심지를 뒤흔드는 문장에 마음을 빼앗겼다가도(이주란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그의 문장에서 느꼈던 정서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애정이 가지 않는 인물들에 조금 거리를 두면서 읽기를 반복했다. 20대의 비혼주의 여성으로서, 또 개인적인 가치관으로는 공감되지 않는 층위의 이야기들이 다소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이고 특수한 이유를 뒤로 물려놓고 보자면, 그 특수함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 보편이나 공통의 가치들이 책 속에 녹아 있다. 책은 가장 자연스럽고 가벼운 것들을 매개로 삼아 상실이나 결핍을 통과하는 이야기다. 「가벼운 점심」에서는 '나'와 아버지가 영영 헤어지기 전 KFC에서 함께 먹은 햄버거가 그것이다. 「피아노, 피아노」에서는 버려진 피아노고, 「하품」, 「고전적인 시간」,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그리고 「파수꾼」에서는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고양이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올까, 작가님이 혹시 고양이를 키우시나? 그런 의문이 자연스레 들 만큼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한다. 생각을 해 보니 몇 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우선 고양이는 생성과 소멸을 매개하는 동물이다. '고양이에게는 아홉 번의 생이 주어진다', '고양이에게는 생과 사를 보는 눈이 있다.' 오컬트 장르 소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설정이다. 상실감을 간직한 소설 속 인물들은 고양이의 눈동자 속에서 여지없이 떠나간 영혼을 발견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가볍고 자연스러운 생물이다. 앞서 말했듯 이 소설은 가벼움과 자연스러움을 매개로 상실과 결핍을 통과하는 이야기니까. 어디서든 그것을 발견하고 애정을 나누어 줄 수 있지만 개보다 진득한 유대 관계를 형성할 필요는 없다. 방임하거나 유기해도 되는 생물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진득한 유대를 원치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시절을 머물다가 떠나가는 네 계절처럼 그 동물은 잔상만을 남기고 예고 없이 훌훌 떠나간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고 없이 다시 온다.

어떤 외로움이나 고통이나 상실감도 계절과 존재를 느끼며 흩어지거나 흘러간다. 그리 끝난다면 좋겠지만 계절이 순환하고 떠났던 고양이가 돌아오듯 근원적인 해소는 불가능하다. 소설은 그래서 애써 해소하거나 쉽게 대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주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과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것을. 한 계절이 다른 계절을 대체하지 못해도 계속 갈음되는 것처럼 존재도 관념도 다른 것으로 갈음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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