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고 울고, 밥을 차려주어도 울고, 꿈속에서도 울며 엄마를 울리던 아이. 그 아이, 원도는 이제 먹을거리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하고 '밥은 먹었니?' 물으며 타인의 끼니까지 신경 쓰는 어른.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어른. 사는 이유를 따져 묻기에는 멀리 온 인생이다. 그리하여 원도는, 삶보다는 죽음 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어 있는 본인을 들여다보며 '나는 왜 죽지 않았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거다.
왜 죽지 않았느냐는 자문은 자연스레 인생이 무엇을 계기로 뒤틀려버렸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뀐다. 원도와 물을 나눠 마시고 '만족스럽다'는 말로 죽음을 맞이한 죽은 아버지. 죽은 아버지는 원도에게 죽음의 공포를 각인시킨 존재다. 매일 울고,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노인들을 씻기느라 바쁘던 어머니는 원도에게 결핍을 알려주었고, 산 아버지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제한된 선택을 강요했다. 스스로 선택하라고 종용하며 원도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원도와 모든 면에서 비슷했던, 어머니가 돌보던 아이 중 한 명이었던 장민석은 원도가 가진 열등감의 근원이었다. 장민석이 원도가 원했던 어머니의 사랑이라든가 관심이라든가 어른스러운 태도 따위를 모두 앗아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랑도 실패했다.
결핍과 실패와 열등감을 가졌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회사 돈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투기를 하고, 여러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는 몰락하여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의 원도는 선택당한 일과 선택한 일들로 뒤섞여 만들어진 결과물로, 죽음의 앞에 와 있다. 그리고 자신의 구멍을,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조각들을 찾는다. 지나온 과거들은 원도 삶의 근원적 욕망인가 구멍인가 어둠인가 사랑인가. 치열하게 자신을 까발리는 그의 모습은 비루하다.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는 징그러울만치 삶을 갈구한다. 자신의 어둑한 구멍을 관찰하고 자조하다가 역설적으로 그 구멍들이 모조리 생에 대한 열망으로 화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독자도 알고 심지어 원도 본인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치열하게 자기를 곱씹고 회상하가다 결국 삶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