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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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낡은 여관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아니, 시작은 그 전부터 했고, '현재 '원도'가 발 디디고 있는 공간은 낡은 여관이며, 그가 사는 계절은 겨울이다.' 이 정도의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주인공 '원도'는 "검은 봉지에 담겨 으슥한 곳에 버려진 불법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낡은 여관에 웅크려 붉은 피를 토하며 생과 사에 대하여 생각한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최진영, <원도> 15p.


배고프다고 울고, 밥을 차려주어도 울고, 꿈속에서도 울며 엄마를 울리던 아이. 그 아이, 원도는 이제 먹을거리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하고 '밥은 먹었니?' 물으며 타인의 끼니까지 신경 쓰는 어른.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어른. 사는 이유를 따져 묻기에는 멀리 온 인생이다. 그리하여 원도는, 삶보다는 죽음 쪽으로 현저하게 기울어 있는 본인을 들여다보며 '나는 왜 죽지 않았는지' 물을 수밖에 없는 거다.

왜 죽지 않았느냐는 자문은 자연스레 인생이 무엇을 계기로 뒤틀려버렸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뀐다. 원도와 물을 나눠 마시고 '만족스럽다'는 말로 죽음을 맞이한 죽은 아버지. 죽은 아버지는 원도에게 죽음의 공포를 각인시킨 존재다. 매일 울고,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노인들을 씻기느라 바쁘던 어머니는 원도에게 결핍을 알려주었고, 산 아버지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제한된 선택을 강요했다. 스스로 선택하라고 종용하며 원도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원도와 모든 면에서 비슷했던, 어머니가 돌보던 아이 중 한 명이었던 장민석은 원도가 가진 열등감의 근원이었다. 장민석이 원도가 원했던 어머니의 사랑이라든가 관심이라든가 어른스러운 태도 따위를 모두 앗아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랑도 실패했다.

결핍과 실패와 열등감을 가졌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회사 돈을 빼돌리고, 그 돈으로 투기를 하고, 여러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는 몰락하여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의 원도는 선택당한 일과 선택한 일들로 뒤섞여 만들어진 결과물로, 죽음의 앞에 와 있다. 그리고 자신의 구멍을,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조각들을 찾는다. 지나온 과거들은 원도 삶의 근원적 욕망인가 구멍인가 어둠인가 사랑인가. 치열하게 자신을 까발리는 그의 모습은 비루하다.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는 징그러울만치 삶을 갈구한다. 자신의 어둑한 구멍을 관찰하고 자조하다가 역설적으로 그 구멍들이 모조리 생에 대한 열망으로 화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독자도 알고 심지어 원도 본인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치열하게 자기를 곱씹고 회상하가다 결국 삶을 택한다.


일어나려면 일단 앉아야 한다. 걷기 위해선 먼저 멈춰야 한다. 함께하길 원한다면 우선 혼자여야 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하고 선택해야 한다. 미룰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다. 주저앉았던 원도가 일어난다. 걷는다. 아직 어둡다. 눈이 내린다.

해가 뜨더라도 충분히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추울 테고, 몹시 배고플 것이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원도가 걷는다. 망설이며 걷는다. 걸으며 묻는다.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 역시 아니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것이다.

최진영, <원도> 240p.


비루한 삶을 사는 한 인간이 그 비루함 속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일 때, 소설 속 문장처럼 생각하곤 했다.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러나 가치 없는 삶처럼 느껴지는 그 삶을 옹호할수도 부정할수도 없게 된 것은 어느덧 그가 나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이해하기 싫어 거부감을 느꼈던 것은 이해가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이나, 이해라는 건 실은 욕망하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저 살기를 욕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살기를 욕망하는 인물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왜 사느냐, 왜 죽지 않느냐 묻던 나에게 원도의 눈동자가 닿는다. 그리고 묻는다.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 그는 비로소 선택당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걷는다.

그때 깨달았다. 이 소설을 읽는 행위와 글을 쓰는 행위, 원도를 욕하는 행위, 원도를 나와 동일시하는 행위, 행위와 동시에 하는 생각들이 모두 삶의 지속을 증명하는 것들이라고. 구멍은, 결핍은 10할의 어둠에 비로소 뚫린 빛의 통로이거나 손아귀에 움켜쥘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각일수도 있다고.

원도로부터, 고독한 나날들에 그보다 지독한 고독을 스스로 덮어씀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함께이길 원하기에 외로움을 선택한다. 기꺼이 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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