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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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다양한 문제들이 저자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빛을 받아서, 거대한 현대사의 물살을 타고 떠밀려온다. 시기를 놓친 이야기들, 복원되어야 할 이야기들, 아니 복원되어야 할 실체들이 너무나 많은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는 거다.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 동안, 그리고 현재에도 그걸 수습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을 법한 시스템에 한계가 있다는 거다. 오래 전 석장리 유물을 발굴하던 선주가 수십 년이 지나서 21세기에 수장된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해까지 분석하게 된 데에는 한 사람 인생의 우연과 그 사람이 쌓아 온 전문성의 영향력도 있었겠지만, 시스템의 부재를 수습하기 위해 특정한 인물들이 동분서주하며 삐걱삐걱 이 나라를 굴려오고 있었다는 반성적인 함의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죽은 사람들은 유해가 되어 땅 속 혹은 물 속에서, 산 사람들은 살아서 세상 곳곳에서 질곡의 시기들을 겪을 동안 너무 많은 건물이 올라갔고 발견은 뒤늦었다. 아니, 발견이 아니라 발굴이 뒤늦었다. 한국 전쟁기 유해 발굴만 해도 전문가가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이 2000년대 이후. 시체가 가득한 땅 위에 도로 터를 잡고 교회와 공장을 비롯한 각종 건물들을 높게 쌓아 올리고……현재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만들어진 땅이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휴전국으로 7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 오고 있고, 남한 내에서도 또다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 적아를 구별하여 총성 없는 전쟁을 매일 같이 벌이고 있다. 그런 오늘날의 상황에 이 책은 단순히 한국 전쟁의 참상만을 고발하는 책으로 납작하게 읽히지가 않는다. 광기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파편이 되어 흩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이 혹시 사실이 아닌 건 아닌지, 그리고 나와 그가,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가 독립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합쳐질 수 있는 지점은 없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을 가지고 사유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에 대해 책이 던지는 물음이자 대답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갈음하고자 한다.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되는 이유는, 황골 새지기에서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은 사는 사람들의 교양이다. 누군가는 '계몽'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계몽이라는 번역어는 주체와 대상을 나누는 것 같아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계몽enlightment'의 본래 뜻은 '이성의 빛'이다. 이성의 빛을 잃는 순간, 우리는 인간임을 포기하게 된다. 맹자는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을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똘레랑스'다. 우리는 이성의 빛을 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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